찬미 예수님, 이곳 칠레에는 여름이 한창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칠레 제일 남쪽에선 겨울날씨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그보다 조금 위쪽에는 봄이 한창입니다. 중부는 한여름을, 북부 사막은 건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칠레는 워낙 긴 나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동시에 4가지 계절을 볼 수 있죠. 제가 있는 산티아고는 여름이지만, 이상기후 탓에 뜻밖의 삼한사온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교차가 무려 20도에 이르기도 합니다.
칠레교회는 11월 8일부터 12월 8일까지를 성모님의 달이자 동시에 가정의 달로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본당에서는 매일 신자들이 모여 묵주기도를 봉헌하고, 가정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남미 신자들이 유별나다 싶을 만큼 성모님을 좋아하는데, 성모님의 달에는 제대 옆에 성모님을 모셔두고 꽃과 전등 그리고 촛불로 화려하게 장식을 합니다.
본당에 매주 꽃꽂이를 하는 자매들이 있는데, 꽃꽂이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도움을 줄만한 자료도 없어서 성모님의 달을 앞두고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매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에 교구에 연락해 자료를 부탁했습니다. 교구에서 곧 전례 꽃꽂이 책을 보내주었고, 저는 곧바로 자매들에게 그 책을 보여주었죠. 처음으로 전례에 어울리는 꽃꽂이를 본 자매들은 신기함과 동시에 따라하기 어려운 산을 만난 듯 난감해 했습니다.
꽃꽂이 장식으로 둘러싸인 성모상.
자매들이 제일 눈여겨본 것은 사진 속 성모님 머리에 예쁘게 쓰여 있는 장미 화관이었습니다. 사진 속 화관을 보고 또 보고, 만지작거리며 연구를 하더군요. 책을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 다음날 전 대리구 사제연수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연수 중간에 ‘띵동 띵동’하고 문자가 여러 개 왔습니다. 쉬는 시간에 확인해보니 꽃꽂이 자매들이 보내온 문자와 사진이었습니다.
“빠드레, 이렇게 한번 만들어 봤는데, 사진하고 좀 다르지만 맘에 드나요?” 다른 자매는 “빠드레 우리 화관 만들었어요”라고 기뻐하면서 사진을 보냈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지난주에는 대림환을 만들고 나서 직접 제게 가져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이냐 묻기도 했죠. “빠드레가 한국에서 본 것과 비슷한지” 궁금해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 주지도 않고, 심지어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일을 위해 미사가 끝난 늦은 시간부터 밤이 될 때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비록 놀라운 기술과 화려한 재료는 없지만 정성만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그들의 마음과 정성을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분명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훈훈하게 하는 것은 화려하고 눈부신 기술이나 값비싼 장식들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며 땀을 흘린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들의 훈훈함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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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훈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