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첫 번째 ‘표징’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입니다. 이 기적을 통해 제자들이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요한 2,11 참조). 그러니 표징이란 누군가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령강림 이후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다가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을 고쳐줍니다(사도 3,1-10 참조). 그러자 온 백성이 “경탄하고 경악하며”(사도 3,10) 그들에게 달려가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사도 3,11 참조). 예수님께서도 표징을 통해 사람들을 믿게 하셨듯이, 교회 또한 표징과 기적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일반적인 선교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파견하면서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도 함께 주셨습니다(루카 9,1 참조). 그런데 요즘은 매우 의학이 발전하고 이성적 사고가 발달해서 그런지 이전보다는 표징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도 아픈 사람이 안수를 해 달라고 하면 치유를 위한 안수를 해 주면서도 저를 통해 그러한 표징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파견하시면서 주신 표징의 힘을 저조차도 완전히 믿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불러 이집트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오라고 보내실 때, 모세는 그들이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파견되어 온 것을 믿지 않을 텐데 어찌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 가지 표징의 힘을 주십니다(탈출 4,1-9 참조).
첫 번째는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던져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습니다. 모세는 두려움에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면 당연히 뱀에 물리게 돼 있습니다. 모세는 겸손한 사람이라 이 말씀에 순종하자, 뱀은 다시 지팡이가 됩니다.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뱀의 말을 들었던 첫 조상들과는 다르게 뱀이 주는 두려움을 이기고 주님께 순종하여 죄를 이기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공생활 초기에 사탄이라 불리는 뱀과 광야에서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러니 첫 번째 표징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어서 항상 죄를 짓고 살았지만 이제는 죄를 이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 세례자는 이 표징만 가지고도 모든 예언자들 중 가장 위대한 예언자가 되어 주님의 길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표징은 손을 품에 넣었다 빼내어 보라는 명령이셨습니다. 그랬더니 손에 나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넣었다가 뺐더니 건강한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모세에게 치유의 기적을 일으킬 힘을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첫 번째를 믿지 않는다면, 두 번째는 믿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번째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 안의 뱀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첫 번째, 두 번째 표징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면, 세 번째로 나일 강의 물을 마른 땅에 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물은 피가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이 이 땅에 뿌려진 것을 상징합니다. 목숨을 내어주는 삶이 바로 가장 완전한 믿음의 표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태석 신부님이 의사임에도 가난한 나라에서 당신 피를 흘려주신 것이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믿음의 표징이 된 것입니다. 나눔만큼 큰 표징은 없습니다. 세례자 수가 줄고 있다면 우리가 주어야 하는 이 세 가지의 표징도 함께 줄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전삼용 신부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교구 영성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