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에서 열린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첫 학술심포지엄에서 교구장 이기헌 주교가 종합토론 후 총평과 함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사드 배치 문제는 이 땅에서 유지되는 ‘불안정한 평화’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소장 강주석 신부)가 12월 9일 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에서 ‘약소국이 꿈꾸는 평화’를 주제로 첫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약자는 언제나 ‘평화’를 깨는 폭력의 희생자들이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강자가 말하는 평화는 약자의 억압과 핍박이었고, 그것은 약자에게 참된 평화가 아니었다. 연구소는 폭력과 무력의 수단을 배제한 ‘참 평화’를 논의하려는 취지에서, ‘약소국이 꿈꾸는 평화’를 첫 심포지엄 주제로 삼았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평화가 강요되거나 깨지는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 상황을 ‘평화학’(平和學)적으로 성찰하는 자리였다.
심포지엄은 크게 세 차례의 발제로 진행됐다.
첫 발제 ‘인문학적 평화론: 평화다원주의’에서 종교학자이자 신학자인 이찬수 박사(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는 누구나 평화를 원하는데 평화가 정착되지 않는 이유를 탐구했다.
두 번째 발표자인 주원준 박사(한님성서연구원)는 ‘고대 이스라엘과 한반도의 정의와 평화-약소국의 체험과 성찰에 기반하여’에서 역사와 지정학적 상황이 유사한 한반도 고대 이스라엘의 정의와 평화에 관해 성찰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발표에서 맹제영 신부(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원)는 ‘가톨릭사회교리로 바라본 한반도 사드 배치와 동북아 평화’ 문제를 성 요한 23세 교황의 회칙 「지상의 평화」에 비추어 성찰했다.
■ 인문학적 평화론: 평화다원주의 -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종교평화학)
“다양성 인정하며 공존 추구해야”
오늘날은 ‘평화 문맹’의 시대다. 평화에 대한 상이한 이해에 기반을 둔 실천이 도리어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롭지 못한 상황이 지속된다. ‘평화다원주의’는 다양성들 간 조화가 가능하다고 여긴다.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평화’라기보다는 ‘평화들’이지만, 그 평화들 역시 ‘평화’라는 공통성을 공유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류는 ‘로마의 평화’나 ‘팍스 아메리카나’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제국주의적 거대 평화를 지향하면서, ‘작은 평화들’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리스도교는 우주적, 궁극적 평화를 논하지만, 그 평화를 다른 종교인에게까지 적용하지 못했다. ‘자기 중심적’, ‘배타적’ 평화주의는 폭력과 같다.
‘다양성이 폭력이 되는 상황’과 대조적으로, 평화는 ‘폭력을 줄이는 과정’이다. 역사 안에서 폭력 없는 세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완전히 끊어진 적은 없다. 이러한 기대와 희망에 근거해 폭력을 축소해나가는 과정이 평화의 과정이다.
폭력을 줄여 나가는 비폭력적 동력 중 하나가 ‘공감’이다. 평화는 다양성의 공존이며, 평화의 주체들이 상호 수용과 조화를 통해 개별적 자기 정체성을 뛰어넘는 ‘비빔밥 평화’이다. ‘공감’에 기반한 ‘공존’이 평화의 다른 이름이고, ‘공감적 공존’은 평화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의 근간이다.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비폭력적직접행동의 모델을 부르디외의 ‘참여적 객관화’에서 찾을 수 있다. 평화연구자라면 스스로를 폭력적 상황 속에 참여시키는 동시에 그 폭력적 상황을 객관화시켜 더 많은 이들로 하여금 폭력적 상황에 눈뜨게 해야 한다.
■ ‘고대 이스라엘과 한반도의 정의와 평화–약소국의 체험과 성찰에 기반하여’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 실천 노력을”
고대 이스라엘은 지정학적 요충지 안에서도 약소국이었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정의와 평화 개념은 당대의 세계 안에서 독특한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다신교 체제와는 다르게 이스라엘은 정의와 평화가 모두 한 분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고백했고, 그 안에서 정의와 평화는 하나라는 영성이 자라났다.
고대 시대에 정의와 평화는 강자가 선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한 번도 강대국인 적이 없었고, 따라서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는 약소국의 정의와 평화였다. 크고 작은 전란에 시달리다가 유배를 겪은 약소국의 백성에게 정의와 평화는 우선적으로 약자의 것이었다.
이러한 개념은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었기에, 정의와 평화는 종말론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러한 추상적 정의와 평화는 이상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적 현실로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약소국은 정의와 평화의 본질을 성찰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도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신학적으로 성찰하기에 적절하다. 다만 오늘날 한국은 아시아에서 절대 약소국이라기보다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준제국주의로 기능할 위험성을 고려해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체험과 성찰은 보편적 차원을 획득했다. 반면 우리는 약소국의 체험과 성찰에 기반을 둔 논리로 설득력 있는 보편적 논리와 실천을 만들지 못했다. 궁극적 희망의 차원과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을 바탕으로, 성령의 영감과 끊임없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 ‘가톨릭사회교리로 바라본 한반도 사드 배치와 동북아 평화–요한 23세 회칙 「지상의 평화」를 중심으로’ - 맹제영 신부(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대 통한 화해와 협력 절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지상의 평화」를 통해 평화로운 세계 질서는 진리와 정의를 바탕으로 건설되고, 사랑과 연대로 완성되며,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할 때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리, 정의, 자유, 연대에 비추어 한반도 사드 배치와 동북아 평화 문제를 살펴보자.
우선 평화의 바탕은 진리와 진실이다. 허위와 거짓으로는 공동체의 평화를 이룰 수 없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의 목적, 효용성, 환경 영향 평가 등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은 그 진실이 드러나도록 노력하고 연대해야 한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다. 성주 사드 배치에 대한 모든 것이 정치, 군사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 정의는 ‘준칙의 보편화 가능성’과 ‘타자의 목적성’과 부합돼야 한다. 따라서 사드 배치는 정의에 역행하는 폭력이자 위헌 행위다.
평화는 또한 자유의 보장이다. 한 국가의 군사 자주권의 종속은, “국가들의 관계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보장돼야 한다”는 사회교리에 전면적으로 위배된다. 따라서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을 계기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과 전시작전지휘권 환수를 통한 군사주권 정상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평화는 연대의 결실이다. 북핵 미사일과 사드 배치로 촉발된 동북아 군비경쟁 격화와 신냉전 체제 가능성에 직면해 관련 국가들은 평화를 위해 연대해야 한다. 특히 남북은 서로를 평화와 통일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연대를 통한 화해 협력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사드 배치가 이뤄지는 성주가 작고 외로운 섬이 되지 않도록,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이가 ‘연대하는 연민’으로 함께해야 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