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2016년에도 여전히 인권, 정의와 평화, 생명의 존엄성 등의 가치가 권력과 물질의 세속적 논리에 압도돼 있는 모습을 보였다. 교회는 이러한 사회와 국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 활동을 펼쳐왔다.
교회 내적 사목 활동 역시 교회 공동체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사회와 국가,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교회는 공동체와 개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성숙을 도모하면서도, 교회 울타리를 넘어선 선교적 관심도 드러냈다. 특별히 2016년 한국 천주교회는 ‘자비의 특별 희년’과 ‘병인년 순교 150주년’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 내적 신앙의 성숙이 하느님과 이웃, 사회 및 국가적 관심과 어떻게 연결된 것인지를 모색했다.
■ 자비의 특별 희년
‘자비의 특별 희년’은 2015년 12월 8일에 시작돼 2016년 11월 20일 막을 내렸다. 이 기간 동안 모든 신앙인들은 신앙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그 원천을 두고 있음을 깨닫고, 이를 구체적인 삶 안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따라 교구 및 본당 차원에서는 희년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사목 프로그램들을 실행했다. 특히 각 교구장들은 사목교서 등을 통해 교구 차원에서 희년 정신을 실천하도록 독려했다.
희년의 실천은 회심으로부터 시작됐다. 각 교구는 상설고해소를 설치하고 전대사 순례지들을 지정해, 신자 개개인이 희년을 보내면서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고 순례와 전대사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청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실천 프로그램도 다양한 형태로 전개했다.
서울대교구는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프로젝트를 통해 자비의 영적·육적 활동이 삶 안에서의 기도와 나눔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도왔다. ‘하자아자’ 운동은 개인적 차원의 기도와 나눔, 그리고 교구 차원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했다.
광주대교구는 소외된 이웃과 낙태 경험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치유의 은총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제주교구는 교구 법원 개편으로 이혼자, 재혼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실천하는 한편 낙태죄를 범한 이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배려했다. 안동교구는 냉담 교우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로서 ‘아버지 품을 떠난 작은 아들 찾기’를 지침으로 실천했고, 청주교구는 ‘가장 작은 이를 찾아가는 교구 공동체의 해’를 목표로 삼아 소외된 이들에 대한 집중적인 사목적 관심을 펼쳤다. 춘천교구의 희년 실천 프로그램인 교구 내 본당 순례도 큰 호응을 얻었다.
4월 3일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과 관계자들이 자비의 희년 실천운동인‘하자아자’선포 후 색줄 자르기를 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병인년 순교 150주년 기념
자비의 희년은 ‘병인년 순교 150주년’ 기념의 해와 겹쳤다. 한국교회의 초석을 놓은 것은 순교의 전통이다. 올해 한국교회는 순교 전통이 복자와 성인 탄생의 영광, 탁월한 신앙 선조에 대한 자부심, 과거의 역사에 대한 회고 등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구현돼야 함을 되새겼다. 또 다양한 학술대회와 순교자현양대회 등을 통해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기억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1월 25일 주교회의 의장 명의로 담화문을 발표했고, 주교회의는 춘계 정기총회를 마치고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사목교서’를 발표했다.
한 예로 서울대교구는 올해를 ‘병인년 순교 150주년 기념의 해’로 선포하고, 2월 23일 명동주교좌성당과 절두산순교성지, 새남터순교성지, 중림동약현성당에서 일제히 개막미사를 거행했다.
한편 올해 4월 26일 최양업 신부가 가경자로 선포됐다. 이어 6월 15일 기적 심사 마지막 법정이 마무리됨으로써, 최 신부의 시복을 위한 모든 국내 절차가 끝났다. 또 프랑스 주교회의는 10월 14~23일 병인순교 150주년과 한불수호조약 체결 130주년을 기념해 한국에 순례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10월 15일 갈매못순교성지 순교자현양대회에서 신자들이 갈매못 순교성인 5위의 초상화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 생명과 가정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이 4월 8일 반포됐다. 한국교회는 이 권고를 일선 사목 현장에 바르게 적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주교회의는 「사랑의 기쁨」은 물론, 혼인 무효 법정 간소화를 위한 안내서인 「혼인 무효 선언을 위한 새로운 규범」도 번역, 출간했다. 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와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12월 12일 세미나를 열어 교황권고의 신학적 전망과 구체적 실천 방향을 모색했다. 생명 윤리 영역에서는 배아 파괴 문제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는 올해 체세포복제배아 연구를 다시 승인했다. 이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모든 인간 배아의 생명권 존중을 촉구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 교회는, 이 법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올바른 시행을 위한 감시 체계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3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7월 4일 ‘국회생명존중포럼’을 창립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성 호르몬 주기를 바탕으로 자연 임신을 돕는 나프로테크롤로지 전용 의료실을 갖춘 것도 주목할 만하다.
국회생명존중포럼 참가자들이 10월 26일 ‘나프로테크놀로지 임신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생태 환경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교회 환경운동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 이 회칙 반포 이후, 한국교회의 환경사목은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주교회의는 3월에 열린 춘계 정기총회에서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환경소위원회를 생태환경위원회로 격상, 신설했다. 이후 12월 5일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본당 사목과의 연계’를 주제로 첫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에 앞서 9월 20~23일에는 ‘한일 탈핵 평화 순례와 간담회’를 마련했다.
서울대교구의 환경운동 역시 획기적 전환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환경사목위원회를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와 분리, 환경과 농촌 사목 각각의 전문화를 꾀했다. 특히 본당 단위 환경 운동 활성화에 주력, 10월 4일 생태사도직단체 ‘하늘땅물벗’을 창립했다.
2016년 환경운동의 가장 큰 이슈는 ‘탈핵’이었다. 2015년 출범한 탈핵천주교연대는 시민 및 교회 단체들과의 긴밀한 연대 안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특히 1월 25일부터 3월 1일까지는 두 차례에 걸쳐 ‘탈핵 희망 국토도보순례’를 실시, 영광핵발전소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517㎞에 달하는 거리를 걸으며 탈핵의 염원을 전했다. 최근에는 2017년 대선 즈음 탈핵을 위한 법적·정책적 제안을 펼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탈핵 로드맵’ 작성에 나섰다.
한일탈핵평화순례단이 9월 20일 고리원자력본부 앞에서 지진 대책 마련과 핵발전소 가동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주교 선종과 신임 주교 임명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가 5월 30일 갑자기 선종함으로써 인천교구민들은 물론 한국교회 전체가 큰 슬픔에 빠졌다. 불과 수일 전까지만 해도 열정적으로 교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던 최기산 주교의 선종에, 교구민들은 안타까움 속에서 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 11월에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4대 수도원장을 지낸 이형우 아빠스가 지병으로 선종했다.
3개 교구에서는 새 교구장 주교가 임명됐다. 원주교구장에 조규만 주교, 마산교구장에 배기현 주교, 그리고 공석이던 인천교구장에 정신철 주교가 임명됐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대구대교구 보좌주교에는 장신호 주교가 임명돼 7월 12일 주교품을 받았다.
‘한국천주교사료목록화사업’도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 사업은 전국에 흩어져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교회 사료들을 목록화해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을 기반으로 검색 및 원사료까지 제공하려는 한국교회의 숙원이었다. 사업은 2017년부터 10년간 진행된다.
남북 관계 경색과 동북아 지역의 긴장은 평화에 대한 사목적 관심을 촉구했다. 의정부교구는 6월 1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를 개소했다. 연구소는 천주교뿐만 아니라 타 종교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연구원으로 초빙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지역, 나아가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다양한 연구를 이뤄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