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온 지 반년 쯤 지났을 때 일입니다. 성당 담장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교리교사 모세가 급히 찾아왔습니다. 공소 교우 한 명이 위독하니 병자성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담장공사를 위해 모래와 벽돌을 계속 날라다 주어야 했던 저는 ‘교우가 위독하니 본당신부로서 당연히 병자성사를 주러 가야하지 않겠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병자성사를 다녀오면 반나절 이상이 걸릴 텐데 한창 바쁠 때 이게 뭐람’하고 속으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리교사에게 그 교우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정말로 병자성사를 필요로 하는지 다시 확인해주길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통신사정이 좋지 않아 확인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저는 최대한 서둘러 모세와 함께 환자의 집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모세의 안내로 찾아간 그 집에는 위독한 병으로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사제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기는커녕, 인기척조차 없었습니다. 이웃집을 수소문한 끝에 모세가 말하길 그 환자(?)는 오늘 아침 일찍 농사를 지으러 집을 나갔고 주말에야 돌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헛걸음을 치게 만든 탓을 모세에게 돌리며 매우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면서, 저에게 그 교우가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순간 아무 약도 가져오지 못한 제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모세에게 화를 냈지만 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아프리카에 선교를 온 건가?’ 너무나 허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러한 시행착오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이곳 주민들과 함께 일하면서는 예정됐거나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제 때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인내와 겸손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기도 당하고 골탕도 먹을 때면 ‘내가 또 이렇게 당했구나~ 내가 이러려고 여기 왔나’하며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화를 내곤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임 신부님께서 해주시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김 신부, 여기서는 무슨 일이든 너무 서두를 필요 없어. 계획대로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안 되는 일도 없으니까. 여기서 지내다보면 사람들한테 속아서 속으로 끙끙 앓을 때도 있을 거야. 그런데 그러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밑바닥을 칠 때가 있을 거야.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런데 잊지 말게나. 자네가 여기 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란 걸.”
선문답 같은 신부님의 조언이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제게 큰 위로와 힘이 됐습니다.
새해입니다. 저마다 세운 모든 계획들이 주님 뜻 안에서 완성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화내거나 실망하진 맙시다. 인간적인 눈에는 하느님의 구원사업 또한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분의 창조사업은 놀랍게도 그 결정체였던 아담의 원죄를 통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고, 인간을 향한 구원계획은 당신께서 손수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완성되지 못했으며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2000여 년 전 이미 시작됐으나 아직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도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이처럼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으신데 피조물인 우리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줄기 연기이기에 그분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기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야고보 4,14-15) 그렇게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 기쁘게 응답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이러려고 여기에 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김종용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