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희양이 어머니 임은주씨 품에 안겨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연희양은 성장장애로 아직 젖니가 다 나지 않은 상태다.
“8살에야 기저귀를 뗐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경남 거제시 옥포동에 사는 박연희(안젤라·9) 가족을 지난해 12월 30일에 만났다. 할머니 김용자(세실리아·65)씨는 연희양이 얼마 전 기저귀를 뗐다며 그것만으로도 한시름 덜었다 말했다.
조부모와 부모, 언니까지 연희네 가족은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가족들은 연희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마음 졸이며 살아왔다. 장애 3급인 연희양은 태어날 때부터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자가호흡 곤란으로 인큐베이터에서 2개월가량을 보내야 했고,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소아의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성장과 뇌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뚜렷한 증상이 없어 제때 치료받기 힘들다. 연희양은 아직 젖니도 다 나지 않은 상황이며 그나마 있는 치아도 보철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성장장애가 미친 영향이다. 배변 조절 능력 또한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 기저귀를 차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였다.
감기나 변비에 걸려도 입원해야 할 정도로 연희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입원할 경우 병원비가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어릴 적부터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고 있기에 보험 가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입원했었기에 가족의 부담은 너무 컸다.
연희의 아버지 박춘근(바오로·47)씨가 조선소에서 족장(선박 등을 건조할 때 작업자들이 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쌓는 발판) 설치 작업으로 버는 200만 원 남짓으론 6식구 생활비로만 쓰기에도 부족한 지경이기에 연희의 병원비가 큰 부담이다.
“돈 때문에 아이의 병을 원망하지 않고 싶습니다. 그런데 자꾸 원망하게 되네요.”
태어날 때부터 아팠고 어쩌면 평생 병과 싸우며 살아가야 하는 연희양을 바라보는 가족의 마음이 불편한 이유이다.
연희양의 할아버지 박두범(프란치스코·76)씨도 3급 장애인이다. 젊은 시절부터 허리와 목 디스크 수술 등 총 9번의 수술을 받았고 방광기능 저하로 소변줄을 꽂고 있어 일상생활조차 불편한 상황이다. 할머니 김용자(세실리아·65)씨가 조선소에서 용접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고 연희의 병원비도 감당할 수 있었지만, 조선업 불황으로 더는 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연희 아버지의 월급만이 이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연희양은 아직 한글을 모른다. 어릴 적 잦은 병치레로 배움의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병치레가 심할수록 가족의 근심은 늘어갔다.
할머니 김용자씨는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을 때 ‘하느님께서 도로 데려가시길’ 기도한 적도 있었지만, 이만큼 성장해서 웃는 모습을 보니 어떻게든 함께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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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헌 기자 david050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