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갑질’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됩니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할 때 쓰는 말이죠. 특히 ‘갑질하는 사람’은 사람이 귀하고 소중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갑질을 하는지조차 모른다고 합니다. 슬픈 일이지요. 그런데 ‘갑질’에는 외적으로 대놓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적으로 갑질을 해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무언의 표정을 통해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내적 갑질’, 혹은 ‘마음 속 갑질’의 한 형태겠지요. 그런데 ‘갑질’은 결국 자기 손해입니다. ‘내·외적인 갑질’, 결국 둘 다 손해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성탄절 다음 날, 잠을 잘 못 잤는지 한쪽 어깨가 뭉쳐서 뻐근했습니다. 그래서 동창 신부님의 소개로 어느 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다 내 이름이 불리자, 해당 번호의 침대를 찾아 신발을 벗고 앉았습니다. 커튼이 쳐진 옆 침대에서는 물리치료사분들과 환자분들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젊은 물리치료사분이 나에게 오셨습니다.
“강석진 님. 벽보고 계시면, 어깨에 초음파 해 드릴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단추를 풀고 벽을 보고 앉았더니, 목에 액체를 뿌린 후 기계로 문지르는 것입니다. 나는 속으로, ‘이런 게 무슨 효능이 있나! 그냥 근육 뭉친 곳 좀 풀어주면 되지! 투덜투덜’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강석진 님, 성탄 때 뭐 하셨어요?”
순간 당황한 나는 속으로, ‘이건 왜 물어보지, 치료와 관계있나! 그리고 성탄 때 수도원 내 방에서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있었는데! 음….’
“집에 있었어요.”
수도원에 오래 살다보니, 이제 수도원이라는 말보다는 ‘집’이란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그러자 물리치료사분은, “저도 24일 밤에 친구들이랑 늦게까지 놀다가, 25일 날에는 형이랑 하루 종일 방에 있었어요. 그러다 둘이 게임도 하고, 통닭도 시켜 먹고….”
‘아이 참, 나는 아픈데, 왜 치료사분이 말을 많이 하실까!’
“강석진 님, 이번 연말이나 연초에는 뭐 하실 거예요?”
“집에 있을 건데요.”
“요즘 몸이 안 좋으시니까 그런가 보네요. 저는 친구들이랑 배낭에 막걸리 한 통씩 담아 산에 가서, 일출을 볼 건데요. 일출을 보면서 막걸리 한 잔씩…, 생각만 해도 좋아요. 이제 침대에 천장 보고 누워보세요.”
물리치료사분은 말을 하시면서도, 치료 과정과 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물리 치료 받은 후에 집에 가서는 스트레칭을 잘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여러 가지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아프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무뚝뚝하게 굳은 표정이 되었습니다. 그 표정은 마치 물리치료사에게 ‘조용히 좀 하라’는 압력을 넣은 것과 같았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