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게으름뱅이야, 개미에게 가서 그 사는 모습을 보고 지혜로워져라’(잠언 6,6) 성경에서 개미는 성실과 지혜의 덕을 지닌 동물을 상징한다.
■ 자신을 ‘개미’라 부르는 수녀
“저는 개미입니다”라고 말하는 수도자가 있다.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성요셉본당(주임 오정형 신부)에서 병원사도직을 묵묵히 수행하는 이인옥 수녀(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가 스스로를 개미라 부르는 주인공이다.
왜 개미일까?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개미는 열심히 다리를 움직여 봐야 몸집이 큰 동물이 한 걸음 움직이는 것만큼도 못 움직이지만 사시사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기 때문이다.
“저 혼자 힘으로는 국군수도병원에서 병원사도직으로 일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오정형 신부님(육군 중령), 병원에서 복무하는 간부 천주교 신자들, 인근 본당에서 찾아오는 봉사자들이 저에게 큰 힘입니다. 저 혼자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신부님이나 간부 신자들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나면 제가 개미라고 느껴지곤 합니다.”
국군수도병원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군병원 가운데 규모나 장비, 의료진 등 모든 면에서 으뜸이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내과 환자를 비롯해 여러 질환으로 고생하는 군 장병 550명 안팎이 입원해 있고 수시로 발생하는 부상 장병들을 치료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전국 모든 부대에서 대형버스를 타고 찾아오는 외래 환자 장병이 하루 1300~1400명이나 돼 국군수도병원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인옥 수녀(가운데)와 국군수도병원 병실 방문 봉사자 이유선(아녜스)씨가 지난해 12월 30일 림프종 치료를 받는 현승환(바르톨로메오) 상사를 찾아 함께 기도하고 있다.
■ 환자 장병들에게 ‘세상에 없는’ 대접을
이 수녀는 외래 환자로 국군수도병원이 만원을 이루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동시에 보람과 사명을 발견하고 있다.
“육해공군, 해병대, 심지어 교도소 수감 장병까지 한꺼번에 1000명이 넘는 장병들이 외래 진료를 오다 보니 잠깐의 진료를 위해 몇 시간씩 대기해야 하는 인원들이 많습니다. 대기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고 성요셉성당에 찾아오는 신자 장병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수십 명씩 되지요.”
스스로 기도하고 싶고 잃었던 신앙을 찾고 싶어 성당을 찾은 장병들에게 이 수녀는 ‘세상에 없는’ 대접을 한다. 성요셉본당 군종병 윤주원(모세) 일병은 평소에도 바삐 움직이지만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예고 없이 성당을 찾는 환자 장병들을 안내하고 말벗이 되느라 분주하다.
“외래 진료를 왔다가 성당에 자기 발로 찾아 온 장병들은 잠깐 스치는 인연일 수도 있지만 평생에 있어 그 짧은 시간이 신앙을 되살려 사회에서도 신앙인으로 살도록 이끌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커피와 라면을 끓여주고 피자도 사주고 묵주도 줍니다. 조그만 선물 하나라도 더 주려고 성당에 있는 것들을 다 동원하지요. 모세 군종병도 성당 악기들을 연주하고 싶은 환자 장병들에게 악기 사용을 안내하고 성가를 같이 부르기도 하고요.”
이 수녀의 병원사도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군수도병원 인근 수원교구 여러 본당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 재속 수도자 30여 명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에 국군수도병원 병실을 방문해 환자 위문과 청소, 신앙잡지와 교계 신문 배부 등 봉사활동을 하는 데 ‘총지휘자’도 맡는다. 봉사자들을 병실 방문 전후에 만나 기도와 위로가 필요한 환자를 공유하고 방문 결과를 서로 나눠 환자 개인 면담 일정을 잡기도 한다. 봉사자들을 통해 주일미사에 나오고 싶어 하지만 거동이 어려운 환자를 파악해 주일 오전 10시30분 미사에 앞서 오 신부와 병자영성체에 나서는 것도 이 수녀다.
■ 잊을 수 없는 환자 장병들
이 수녀는 수없이 많은 환자 장병들을 만나며 국민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군인하면 건강하고 멋진 모습을 먼저 떠올리지만 아픈 군인도 정말 많다는 사실이다. 병마에 시달리며 애절하게 하느님을 찾던, 잊을 수 없는 이들도 많다.
“언젠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병사가 얼마나 살고 싶었는지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저에게 보내주세요’라고 절실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병사를 상담하고 8주간 개인교리를 거쳐 요셉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도록 온갖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하느님이 도우셨는지 요셉은 세례를 받고 병에서 회복이 됐습니다.”
잊지 못하는 병사가 또 있다. 성요셉성당을 자주 찾는 비신자 병사가 있었다. 이 수녀는 그 병사에게도 세상에서 최고의 정성을 기울였다. 어느 날 “수녀님, 쟤 조심하세요. 영창 여러 번 갔다 온 친구예요”라는 귀띔을 들었다. 그래도 이 수녀는 그 병사가 성당에 올 때마다 친절과 호의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전역하고 사회에 나갔는데요. 과거에 어떤 모습으로 살았든 저와의 인연을 기억하고 건실한 청년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 믿어요.”
이 수녀는 새해를 앞둔 12월 30일에도 병실 방문 봉사자 이유선(아녜스·수원교구 분당 성요한본당)씨와 림프종 치료를 받고 있는 현승환(바르톨로메오) 상사 병실을 찾았다. 세 사람은 손을 모아 함께 기도하고 쾌유를 기원하는 격려의 말을 주고받았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일이기도 하지만 현 상사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고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