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염색한 제의 원단 앞에서 선 이지영 작가. 이지영 작가 제공
미사 전례를 거행하는 사제의 제의(祭衣)는 예수님의 멍에를 상징하고 애덕을 표현한다. 사제들이 제의를 입으며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으니 저로 하여금 주님의 은총을 누리도록 이를 잘 짊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바치는 것은 제의가 지니는 의미를 잘 드러내 준다.
‘가톨릭 제의 아티스트’를 자처하는 이지영(로사리아·태국 방콕 한인본당) 작가는 이러한 사제들의 기도를 담아 20년 가까이 한국 고유의 전통 기법으로 제의를 만들고 있다.
‘전통 색동 제의전’ ‘누비 제의 전시’ ‘전통 백색 제의전’ 등 그간 여러 차례의 전시를 통해 전통 제의를 발표해 온 이 작가가 2월 1일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하늘 옷’ 주제로 2017년 개인 전시회를 연다.
30여 점의 제의와 영대, 장백의 등을 선보이는 전시는 ‘순수’ ‘자비’ ‘희생’ ‘화합’ 등 4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부활 신앙을 사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부활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순수와 자비, 희생, 화합의 삶이 요구된다는 면을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김 작가는 의도를 밝혔다.
“순수는 정직이라는 뜻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결국 신앙인들은 정직하게 용서하면서 예수님이 자비로우셨듯, 자비의 삶을 실천하면서 주님을 따르는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희생은 곧 사랑일 것이고요. 그 모든 것은 또 일치의 생활을 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전시에서는 포슬린 페인팅 및 최근 전수받은 태국 왕실 도자기 벤자롱(Beanjalong) 기법의 성미술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작가는 전시 소감을 밝히며 한국 가톨릭 제의의 토착화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베 모시 등 우리나라는 원단이 매우 다양합니다. 전통적인 색동옷이나 조각보 등은 훌륭한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유의 것들을 활용해서 제의를 만드는 것은 제게 하나의 소명이자 미션이라고 여겨집니다.”
전시 작품 중 ‘오병이어’를 표현한 제의. 이지영 작가 제공
제의 제작은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원단을 디자인하고 염색하고 누비와 자수 작업을 거쳐 한 벌의 제의가 만들어지기까지, 평균 3~4개월이 소요된다. 그것도 함께 제의를 만드는 장인들 덕분에 가능한 시간이다. 그는 “제작 전 과정이 기도이고 묵상이면서 하느님을 만나는 ‘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만든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를 보면서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는 이 작가는 “부족한 나를 도구로 써주셨기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릴 뿐”이라고 했다.
“겸손과 사랑의 옷인 제의는 미사를 함께 봉헌하는 우리도 마음으로 함께 입고 가야 할 옷”이라고 밝힌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이론화 작업을 통해 한국 전통 제의 제작 기법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염색디자인을 전공한 김 작가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와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한-터키 교류전, 서울 섬유미술제 등에도 전통 제의를 출품해 예술과 결합된 교회 미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려왔다.
그의 제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도 봉정됐다.
전시는 2월 7일까지. ※문의 02-727-2336~7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