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콘 작업 중인 노매군씨. (노매군씨 제공)
계기는 한 장의 달력이었다. 20여 년 전 어느 날,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표현한 이콘 달력을 보게 됐다. 묘한 끌림이 느껴졌다. 직접 배우고 그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살고 있는 대만에는 전문적인 이콘 학교가 없었다. 미국에 건너갔다. 단기 과정으로 이콘을 배웠지만 좀 더 이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2014년이 끝나갈 즈음, 러시아의 전문 이콘 잡지에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작품이 소개됐다. 이콘 교사는 대만과 가까운 지리적인 위치, 높은 작품 수준을 지닌 연구소라는 점을 감안해 한국행을 추천했다. 이메일과 전화로 연구소 측과 입학을 상의한 뒤 3개월여 동안 한국어를 익히고 서울로 향했다.
2월 8일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이콘연구소 제12기 연구생 졸업작품전에 참여하는 노매군(마뉴엘라·대만 카오슝교구)씨 이야기다. 그는 요한복음을 주제로 한 이번 작품전에 ‘산원기도’(山園祈禱) 제목의 이콘을 출품한다. 수난 전날, 겟세마니 동산에서 제자들이 잠든 가운데 예수님 홀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는 장면이다.
“큰 축복으로 생각됩니다. 처음으로 제가 직접 완성한 작품을 전시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이콘연구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콘연구소의 입학과 수업 과정은 녹록지 않다. 스케치부터 이콘 작업을 완성할 때 까지 3년이 소요된다. 노매군씨는 이미 이콘 제작의 기본을 배웠기에, 이 기간을 1년 6개월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작품 완성도 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그는 “생활적으로 신앙적으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연구소 동료들과 선배들 덕분에 계획된 시간 안에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노매군씨의 ‘산원기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제자들이 잠든 가운데 예수님 홀로 기도하는 장면이다.
성경 속 인물, 장면들을 스케치 하고 한 겹 한 겹 덧칠 하는 작업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는 그는 자신을 ‘하느님의 시녀’라고 했다. 하느님의 거룩함을 이콘으로 옮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콘은 제가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마주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모마리아와 성인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됐습니다. 눈으로 보는 성경이라는 말처럼 신앙인들은 이콘을 통해 사랑하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콘 작가들은 하느님을 전하는 ‘선교사’인 것 같다”고 말한 노매군씨. 그는 전시회 이후 대만으로 돌아가 이콘교실을 열 계획이다. “무료 강좌로 진행, 많은 대만교회 신자들이 이콘을 알고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이콘의 기초에서부터 영성까지 배울 수 있는 2년 과정의 수업이다. ‘렉시오 디비나’ 등 기도 강좌도 함께 병행할 계획이다. ‘이콘을 그리는 가장 중요한 물감은 기도’라는 말처럼, 이콘 작가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연구소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들이 그간 작업한 이콘을 기증해 주는 등 고향에 개설할 이콘교실에 이미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시한 노매군 씨는 “앞으로 연구소의 강사들을 초빙, 특강 등을 마련하면서 이콘을 통해 한국교회와 대만교회가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