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14, 1∼6)
예수께서는 아직도 페레아 지방에 머물러 계신다. 여기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들였다. 헤로데가 보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물러가고 또 다른 부류의 바리사이파 사람과의 접촉에 유의할 만하다.
예수를 초대한 사람은 예루살렘의 바리사이들, 유대아 지방, 갈릴래아 지방의 바리사이들과는 달리 예수께 대한 편견을 가지지도 않았고 앙심을 품지도 않은 듯하다.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라 했지만 산헤드린 즉 최고의회의 일원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최고회의 의원은 예루살렘에 있지 페레아 지방에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사람은 아마도 지방 회당의 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지도자의 초대를 받고 그 집에 들어가신 것은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의 접촉을 의미한다. 교리 상 반대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선교정신을 보여 주신 것이다.
오늘 이어지는 대화는 상대방이 예수께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는 만큼 예수께서도 다른 바리사이들처럼 대하지 않고 그저 율법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 사람이 예수를 왜 초청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때쯤 되었을 때에는 예수의 명성은 어느 곳에나 퍼져 있었고 대부분은 예수를 예언자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곳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의 명성은 듣고 있었지만 직접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호기심도 컸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유대아인들은 안식일을 대축제로 지냈는데 그 날 일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날 준비한 식사를 먹게 되었고 따라서 식사는 찬밥이었다. 그러나 축일에 걸맞는 성찬을 차렸다. 그들의 식사 관습을 보면 평일에는 두 번 식사하고 축일인 안식일에는 세 번 식사를 하였다. 그 세 번 식사 중에도 점심이 주 식사였다. 그리고 이 식사는 안식일 예배를 본 후에 먹었다. 이날에는 먹고 마시기도 하고 율법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축일에 걸맞게 손님들이 초대되었고 초대된 손님들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이날만큼은 가난한 사람 고아 나그네들이 배를 곯아서는 안 되었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창조를 감사하고 유대아인들이 에집트 귀양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민족사적인 대축일인 만큼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특별히 가호하신다는 신념을 가지고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을 지내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가지는 특혜로 생각하고 있었고 이 축제를 지내는 자세한 규정을 한 율법 해설서와 율법학자들의 의견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전에 바리사이파와 예수가 정면충돌하였던 것도 바로 이 해석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은 그들만의 하느님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라는 것과 안식일은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한 휴일이라는 교리를 폈고 이것이 그들의 비위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복음서에서 바리사이파들과의 안식일 논쟁의 진전과정은 흥미롭다. 첫 번째 사건은 가파르나움 회당에서 마귀 들린 자를 다루는 솜씨였다. (루가4, 31 이하: 마르1, 21). 여기서 예수는 굴복시킨 마귀의 입을 막아 예수의 신분을 발설하지 못하게 하였고 군중은 이를 보고 경탄하였다.
두 번째는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비벼 먹는 것을 문제 삼았던 논쟁이었다(마르2, 28: 마태12, 8: 루가6, 1). 여기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임을 밝혔고 바리사이파인들은 침묵으로 듣고만 있었다. 세 번째는 안식일에 손 병신을 고쳤다 해서 안식일 법이 문제 되었는데(마태12, 9∼14: 마르3, 1: 루가6, 6) 예수께서는 구덩이에 빠진 양의 예를 들면서 안식일의 근본정신은 착한 일을 하는 것이라 했다. 이때 적대자들은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의논을 시작하였고 결국 없애버리자고 음모하였다.
네 번째는 18년 동안 허리 병을 앓던 여인을 고쳤다 해서 트집을 잡았는데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의 땅 즉 너희 동족을 사슬에서 풀어준 것이 잘못이냐고 반문하였고 적대자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기뻐하였다는 것을 복음서는 덧붙였다(루가 13, 14이하).
오늘의 이야기가 안식일에 관한 마지막 설교인데 이 잔칫집에서 물종기(水腫病)에 걸린 사람을 고쳐준 후 안식일에 관한 가르침을 율법학자들에게 내리는 이야기이다. 물종기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나쁜 생활을 한 사람이 걸리는 죗값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 사람은 이 집의 초대 손님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일은 손님들이 집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이날은 그들이 질문하기 전에 예수께서 먼저 질문하였고 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안식일 논쟁은 이미 끝났다는 뜻일 수 있다.
자기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다면 안식일이라 해서 구해내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사해(死海) 근처 쿰란에서 발굴된 다마스쿠스문서 중 율법해설서 미쉬니에는 사람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을 경우 안식일 규정이 강온 두 가지로 나와 있다. 강경규율은 죽지 않도록 먹을 것만 넣어 줄 수 있다는 것이고 온건규율은 구출해 낼 수 있다는 규율이다. 예수 당시에는 온건 규율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일이 법에 어긋나느냐고 묻는 형식으로 안식일 법을 해석하여 가르치셨다. 아들과 소를 묶어 예로 든 것과 이들이 우물에 빠지는 것, 그리고 구해내는 것 모두 적절치 않은 예인 것 같은데 학자들은 이 세 명사가 히브리어에서 비슷한 발음을 한다는 문체적 묘사법에서 왔다고 해설하기도 한다. 즉 아들은 「베라」 소는 「베이라」 우물은 「페라이」이다. 짧은 격언 또는 교훈으로 짜임새 좋은 문체가 될 수 있다. 하여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날이라는(루가 13, 15) 뜻이고 구원의 때가 왔다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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