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년 새해를 맞았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각자 많은 계획과 다짐으로 희망에 찬 새해 첫날을 보내고 있다. 올해는 꼭 집 장만을 하겠다는 가장의 꿈, 새로운 삶의 동반자를 찾아 멋진 인생을 시작해 보겠다는 젊은이의 꿈, 고3이 되는 우리 아들이 올 한 해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학에 합격했으면 하는 어머니의 꿈 올해는 꼭 장학생이 돼보겠다는 청소년의 꿈 등등 나름대로 한 해 동안 삶의 방향과 목표를 잡고 거기에 다다르기 위해 다양한 실천계획을 구상하고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위의 어두운 곳에선 불우한 이웃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보내고 있다. 그들의 추위와 굶주림은 단지 옷이나 먹을거리가 없어서라기 보단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나눔의 정이 그리워서인지도 모른다.
물론 소말리아의 어린이들은 옷과 먹을거리가 없어 죽어가고 있다.
우리 주변에만도 외국인 노동자, 외로운 노인들, 소년소녀가장, 불우시설 단체의 장애인 등 많은 이가 물질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따뜻한 미소와 관심을 나눠주는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결코 이들은 남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의 부모가 나의 형제가, 내가 이웃의 나눔을 간절히 바라는 이웃이 될 수 있다.
희망찬 한 해를 설계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내가 구상한 신년계획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자.
본보는 올 한해 모든 이가 「나눔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온정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희망한다. 단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시간, 미소, 노력, 사랑 등을 이웃에게 나눔으로써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평화를 맛보길 희망한다.
바로 「나눔으로써 더불어 사는 삶」이 본보가 다짐하는 신념의 목표이며 지속적으로 실천해 가고자 하는 연중기획이다.
나누는 기쁨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은 다름 아닌 수많은 이웃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조그만 여유를 고통 받는 주위의 이웃과 나누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며 그 나눔은 이웃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몇 갑절 큰 기쁨으로 되돌아오게 되지요』
본보를 통해 도움을 호소하는 어려운 이웃에게 종종 성금을 보내오는 송선민양(크렌시아ㆍ서울 대방동본당)이 말하는 「나눔」의 소감이다.
몇 만원 성금이 어느 사람에게는 부담 없는 금액일지 모르지만 대학을 다니는 송양에게는 열흘 동안 점심식사를 굶어야 할 정도의 거액이다.
지난 한 해만도 본보에 도움을 청한 형제들은 거의 한 달에 1명꼴.
도움을 호소하는 신문기사를 읽고 성금을 보내온 얼굴 없는 이웃들의 따뜻한 나눔의 손길로 이들은 생명을 건지는 수술을 받게 됐거나 편안한 휴식을 얻을 방 한 칸을 마련하기도 했다.
소말리아를 돕기 위한 성금모금 또한 많은 이들의 정성이 쏟아져 최근 본보로 보내온 기금을 집계한 것만 해도 7천4백85만8천5백23원에 다다르고 있다.
백혈병으로 쓰러졌으나 치료비가 모자라 어려움을 겪었던 백미숙씨(요안나) 이야기는 지난해 10월 25일 본보를 통해 전해졌다. 그 후 한 달 만에 답지한 1천3백여만 원의 성금으로 백씨는 지금 수술준비에 들어갔다. 백씨의 남편 홍태식씨는 『이웃들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꼭 아내를 살려내겠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아내가 나아서 건강을 회복하면 우리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아가겠다』고 고마운 마음을 대신했다.
이렇게 조그만 나눔이 또 다른 나눔으로 확대됨으로써 사회가 거대한 사랑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나눔의 고리로 연결된 공동체 속에서 나 또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물질적인 여유가 있으면 나눔이 결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물질적인 나눔에는 우선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전제된다. 정신적인 나눔의 바탕이 나보다 못한 이웃들을 생각하게 하고 나에게도 모자란 물질을 이웃을 위해 떼어놓게 한다.
자신의 시간과 힘을 나눔으로써 소외된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많은 자원봉사자들 또한 정신적, 물질적 나눔을 모두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봉사를 한다고 하지만 제가 이곳에 와서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제가 이곳 양로원에 와서 노인들에게 말동무도 해드리고 씻겨드리기도 하지만 사실 제가 노인들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에 대한 학비도 안 될 겁니다』
양로원에 다니는 한 자원봉사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나를 내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나눔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나의 삶을 기쁘고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이것은 조그만 나눔이라도 실천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나눔의 진리」이다.
주어라, 받을 것이다
본보에서 기획하는 「나눔으로써 더불어 사는 삶」을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는 교회 내 단체도 있다.
훠꼴라레 운동본부는 이미 91년부터 공식적으로 「내어주는 문화」를 표명했으며 현재 다섯 살 박이 꼬마에서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전 회원이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훠꼴라레는 단지 이웃들에게 나누는 기쁨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에게도 자신의 편안함과 사랑을 내어줌으로써 가족 간의 평화,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 평화까지 이룩해 가고 있다.
훠꼴라레 창시자 끼아라 루빅은 91년 브라질을 방문, 부익부 빈익빈의 처참한 사회상황을 본 후 서로 나누는 삶을 살아가자고 제안했다. 고층빌딩과 찬란한 네온사인 주위를 마치 예수의 가시관처럼 둘러싸고 있는 슬럼가를 본 끼아라는 「내어주는 문화」를 주창하면서 단지 물질만을 내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소를, 이해를, 용서를 내어 주는 범위로까지 확대시켰다.
『저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지요. 휴일날 부랑자나 영세민을 위해 무료로 운영되는 병원에 간호사 한명이 하루 동안 봉사를 나가야 하지만 아무도 자원하지 않았어요. 나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가겠다고 자원했습니다. 나는 그날 고통 받고 버림받은 예수님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말기 암환자, 결핵환자, 연고자가 없는 환자 등 그분들을 따뜻하게 대해 드렸더니 매우 고마워하시고 자신의 고통을 얘기했습니다. 봉사자들에게 차비로 지급되는 약간의 돈을 「주는 문화」를 기억하며 다시 가난한 이웃에게 돌려 드렸습니다』
훠꼴라레 회원인 박현주(마리아)씨는 이후에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자신이 아끼고 소중해 하던 것들을 가족에서 동료에게 베풂으로써 다시 되돌려 받는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항상 자신의 주위를 살펴보고 필요치 않는 물건들, 여벌로 가진 옷들, 생활용품 등을 이웃에게 나누고 불필요한 물건도 충동구매하지 않도록 자제하게 됐다고 말했다.
훠꼴라레의 「주는 문화」는 바로 소비주의로 인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쾌락주의가 판치는 현시대에 전면적으로 대응하는 운동으로서 「주어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마태 7, 11)라는 복음에 가장 충실한 나눔의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나서 그 기쁨의 행위로 먼저 나눔을 실천하게 됩니다. 무언가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지요. 그것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형제에게 베푼 것이 바로 내게 한 것(마태25, 40)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나눔을 통해 또다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훠꼴라레가 그 나름대로 「내어주는 문화」를 구축해 가듯 각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 나름대로의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과소비와 향락주의, 또한 사회소외계층에 대한 염려가 모두 나의 작은 나눔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본보가 기획하는 「나눔으로써 더불어 사는 삶」이며 이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바탕이 되는 기본 정신이다.
나눔의 문화 창출을
우리는 날마다 나눔의 신비를 경험하고 있다.
예수님의 몸을 쪼개어 서로 나눠먹는 성찬의 신비는 바로 세상에 나가 이웃에게 자신을 쪼개어 나눠줄 때 진정한 그 의미를 갖게 됨을 경험하고 있다.
내가 가진 물질의 일부를 가난한 이웃에게 쪼개어 주고 내가 가진 여력이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쪼개어 나눠줄 때 성찬의 신비가 내 안에서 실현될 수 있다. 특히 물질이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동안 내게 맡겨진 것이며 진정한 주인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다. 자원 봉사나 물질적 도움만이 나눔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이 주변에 산재해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길을 묻는 이웃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도 나눔이고 길을 가다 부딪친 이웃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미소를 주는 것 또한 나눔이다.
혼잡한 거리에서 앞차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내어준다. 길이 뚫린다. 내가 나눈 양보의 마음이 짜증스럽기만 한 교통문화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줌으로써 내가 웃고 이웃도 함께 웃을 수 있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세제나 스프레이 등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깨끗한 환경을 이웃과 나눠 가질 수 있다.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지속적인 나눔에 앞장서 온 이들은 나눔이 『내가 먼저 실천해 보겠다』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것 미소, 이해, 사랑, 물질, 용서, 시간 등을 나의 이웃과 나눠 가질 때 「살기 어려운 세상, 무서운 세상」이라는 세태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또한 교회가 추진하는 2천년대 복음화 또한 사귐과 섬김과 나눔으로써 활성화될 수 있다.
2천년대 복음화를 위한 나눔은 가장 먼저 개개인 신자들이 스스로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가며 생활 속에 실천할 때 완성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을 내어주는 「나눔」의 모습이야 말로 교회가 진실로 갖추어야 할 모습이며 쇄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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