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집·밥 (상) 주거생활
주머니 사정 맞춰 떠돌이 삶… “언제쯤 안정된 생활 할까”
소득에 비해 높은 주거비용
돈 모으기 쉽지 않아 악순환
서울 장위1동본당 ‘햇살자취방’
저렴한 월세로 청년들 도와
“저축 가능하니 앞날 준비도”
‘N포 세대.’ 포기할 것을 셀 수도 없어 ‘N’으로 표시하는 이 세대는 우리나라 청년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오늘날 청년의 ‘N포’는 구체적으로 주거와 식생활에서 드러난다. 청년들은 안정적 주거지를 찾지 못해 계약 기간에 따라 떠돌고 주거가 안정되지 않으니 식생활도 불규칙하다.
이에 본지는 2주에 걸쳐 우리나라 청년의 주거생활, 식생활을 살피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색하고자 한다.
■ 나는 언제까지 원룸에 살아야 하나
인천에서 서울 마포구로 출퇴근하는 조 클라라(40)씨. 인천지하철 인천시청역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원룸에 산다. 월세 38만 원 관리비 6만 원. 월급이 150만 원인데 44만 원이 주거비로 나간다. 한 달 출퇴근 교통비도 10만 원 이상 지출된다. 비상금 마련을 위해 적금 30만 원을 넣고 나면 월급날엔 오히려 한숨이 나온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언제쯤 원룸을 벗어날 수 있을까. 30만 원씩 얼마나 모아야 1억 원이 넘는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대출을 받더라도 그 돈을 갚을 수 있을까.’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그런데…
대학생 오경택씨의 자취방. 자주 이사 해야 하는 사정이어서 임시 옷걸이를 사용하고 있다.
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오경택(29)씨. 그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말한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실시하는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에 당첨돼 전세금 걱정을 덜 수 있었어요.”
LH가 실시하는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은 부모와 본인 소득이 낮은 대학생에게 전세 보증금을 빌려주고 낮은 금리의 이자를 받는 대학생 주거 지원 제도다.
오씨는 7500만 원을 LH에서 지원받아 학교 근처에 전셋집을 구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방 3개에 욕실과 주방이 있는 빌라다. 이 집의 원래 전세 보증금은 1억3000만 원이 넘기에 월 38만 원 월세를 내고 있다. 오씨는 친구 2명을 모아 함께 살면서 이자와 월세를 공동으로 부담하고 있다.
“LH에서 지원 대상을 심사할 때 운 좋게 기준에 맞았습니다. 제 친구는 부모님 소득이 아주 적은 데도 부동산이 있다는 이유로 선정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도 내년에는 지원 기간이 끝나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고 집도 옮겨야 합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현재 자신의 주거 생활에 바라는 점이 있다. “안정이 안 됐다는 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또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옷장 마련도 못하고 행거를 쓰고 있어요. 침대도 접이식 간이침대고, 식탁 둘 곳이 없어 접는 상을 다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가구나 집기 대부분이 언제든지 쉽게 옮길 수 있는 것들이다. 오씨의 방은 비교적 정리가 잘 돼 있었지만 침대와 상 등을 수시로 접고 펴는 수고를 했기에 가능한 상태였다. 오씨와 같이 사는 친구는 방이 좁아 옷을 둘 곳이 없어 옷걸이를 거실에 내놓기도 했다. 오씨 집에 들어서자 그 옷걸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이 친구는 원룸에서 두 명이 살다가 방을 혼자 쓸 수 있다고 하니까 제가 사는 집으로 이사 왔어요”라며 이사를 자주 다니는 대학생의 주거 생활 단면을 말했다.
■ ‘햇살자취방’에서 삶의 질 높아졌어요
서울 장위1동선교본당은 2012년부터 ‘햇살자취방’을 운영한다. 본당이 전셋집을 얻어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는 수입이 적은 여성들에게 저렴한 월세(7~15만 원)로 자취방을 빌려준다. 보증금은 월세의 3배다. 햇살자취방을 시작할 당시 본당 주임이었던 이강서 신부(서울 삼양동선교본당 주임)는 “높은 주거비용으로 힘든 청년들과 고통을 나누자는 의미에서 시작했다”며 햇살자취방의 취지를 밝혔다.
현재 햇살자취방에 사는 박은경(헬레나)씨는 햇살자취방에 들어온 뒤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월세가 기본적으로 40~50만 원인데 여기는 월세가 저렴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저축도 시작했고 경차도 할부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박씨는 경제적인 면 외에도 정서와 안전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음을 밝혔다. “현재 저 포함 3명의 여성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원룸에서 살면 불안할 때가 많은데 같이 사니까 서로 먹을 것도 챙겨주고 아플 때 보살펴 주어 훨씬 안전합니다. 마치 집에서 다니는 느낌이 들어요.”
서울 장위1동선교본당 소속 평화의집 실무자 정 아녜스씨가 햇살자취방 주방을 보여주고 있다. 햇살자취방은 본당이 젊은이들을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하는 전셋집이다.
박씨는 햇살자취방에서 방장을 맡고 있다. 일종의 입주자 대표로서 각종 공과금을 분담하고 선교본당과 자취방 입주자 간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햇살자취방을 운영하는 본당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생활하면서 표현한다.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은 20~30대 친구들입니다. 대부분 결혼하거나 자리를 잡아서 이 집을 떠났습니다. 이곳은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이 집 구하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 때 도와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희를 배려해 주시는 데 대한 보답으로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관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지혜 기자 sgk9547@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