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 소설 「침묵」을 영화로 만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 한 장면. 올댓시네마 제공
17세기 초, 포르투칼 예수회의 로드리게스 신부(앤드류 가필드)와 가르페 신부(아담 드라이버)는 일본 선교를 떠난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가 배교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일본을 오가는 무역상을 통해 몇 년 만에 어렵게 전해진 페레이라 신부의 편지에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선명한데도 말이다. 이들은 ‘신앙의 스승’으로 여길 만큼 영적 지도 사제로 섬겼던 페레이라 신부의 소문을 믿을 수 없다. 결국 ‘일본 땅을 밟는 순간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실종된 스승을 찾아, 박해로 어려움을 겪는 일본교회를 위해 길을 떠난다.
‘사일런스’(Silence)는 20세기 일본 문학의 대가 엔도 슈사쿠(1923~1996)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신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는 세계적인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을 맡아 이미 제작 과정에서부터 화제가 됐다.
영화 배경이 되는 17세기 일본 천주교회는 도쿠가와 3대에 걸친 박해로 수만 명의 순교자가 발생한 상태였다. 도쿠가와 막부가 쇄국정책을 강화하면서 가톨릭 신자들을 전멸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색출이 강화됐던 때다. 십자가와 성모상 및 성화 등을 밟게 해서 배교를 증명하는 ‘후미에’도 강행됐다.
어렵사리 일본에 도착해 숨어있는 신자들을 만난 로드리게스 신부와 가르페 신부는 ‘하느님을 모른다’고 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훨씬 더 참혹하고 절박한 상황을 마주한다. 후미에를 통해 적발된 신자들은 바닷물에 수장되고 불에 태워지고 목이 베인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영화의 제목과 주제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자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우리의 기도는 어디에 닿는가.” 그는 신자들 죽음을 지켜보며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하느님의 ‘침묵’에 질문을 던진다. ‘침묵’의 무게가 두렵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순교가 치욕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린다.
기치지로의 밀고로 체포된 로드리게스 신부는 신자들 목숨을 담보로 후미에를 강요당한다. 자신 때문에 고문당하는 신자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그저 형식뿐’이라고 배교를 회유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눈물 흘리는 그의 모습은 조마조마함과 안타까움으로 보는 이들의 가슴마저 옥죈다.
로드리게스 신부가 내내 궁금해 했던 ‘침묵’은 영화 말미에서 그 답이 찾아진다. 침묵이라 여겼지만 하느님은 결코 침묵하지 않았음을, 괴로움의 곁에서 함께하셨음을.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믿음의 끈이 드러나면서 다소 애매하게 끝을 맺었던 원작 소설보다 결말은 좀 더 명확하다.
로드리게스 신부와 페레이라 신부는 엔도 슈사쿠가 「침묵」의 후기 형식으로 펴낸 ‘침묵의 소리’에서 밝혔듯 실존 인물이다. 페레이라 신부는 이름까지 그대로 소설에 가져왔다. 페레이라 신부로 분한 리암 니슨은 영화 ‘미션’에 이어 이번에도 예수회 선교사 역을 맡아 눈길을 끈다.
1980년대 「침묵」을 읽은 뒤 영화를 준비했다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15년 동안의 각색 작업을 거쳐 사일런스를 완성했다.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마련된 한 인터뷰에서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생에서 최우선 순위였다”고 밝힌 바 있다.
대만에서 촬영된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영화상 촬영상 후보에 올랐다. 삶과 신앙, 믿음의 문제를 치밀하게 다룬 원작 내용을 영화에 잘 녹여냈다는 것이 교계 관계자들의 평이다. 2016년 전미비평가협회 각색상을 수상했다.
2월 28일 개봉. 상영시간 159분. 15세 관람가.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