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에는 세계사적인 대변혁속에서 한반도에도 격랑이 몰아칠 것이 예상되고 있다. 이미 도덕성 실종ㆍ경제침체ㆍ정치혼돈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우리 사회는 금년에 시행될 4대 선거로 인해 유례없는 혼란과 갖가지 악덕들이 전국을 휘감을 것이 우려되고 있다.이에 본보는 희망찬 국가사회 건설을 위해 ①근검절약의「알뜰하게 살자」②우리의 근면정신을 되살리자는 뜻의「열심히 일하자」③복음의 근본 정신에 따른「이웃과 나누자」④인간생명 및 동ㆍ식ㆍ광물의 자연환경보전을 위한「생명을 지키자」등의 4대 캠페인을 설정,이번호부터 수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한국국민들은 쇼핑을 통해 그들의 경제적 성공을 축하하고 있고 강남의 한 백화점의 경우 한 개에 1백40만원인 어린이 침대와 3백30만원짜리 일제 골프세트, 심지어 50만원짜리 팬티가 팔리고 있다』
이것은 미국 시사주간지「뉴스위크」가 91년 11월 11일자호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룬 한국의 과소비풍토 기사중 한 대목이다. 「너무 일찍 너무 부자가 됐다.(Too rich, too soon)」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과소비를 총체적인 면에서 장문(長文)게재한 뉴스위크지는 한 여성의 말을 인용,『돈이 너무 많아 주체를 못하는 한국사람이 많다』고 꼬집으면서『한국경제가 분수에 넘친 과소비로 더욱 악회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뉴스위크지의 보도가 아니더라도 지금 한국경제는 전계층으로 퍼진 과소비풍조로 몸살을 앓고있다. 60년대초「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똘똘 뭉쳤던 한국인들이 그로부터 30년정도가 흐른 지금 1백수십억달러의 무역적자와 3백62억여달러의 외채를 떠안고 있는 상태임에도 흥청거리며 먹고 쓰기에 바빠져 있는 것이다.
무역적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미술ㆍ골동품ㆍ사슴피ㆍ횟감용 활어 등이 수입되고 있고「30분 일더하기, 씀씀이 10% 줄이기」운동이 한창인데도 골프장은 사회지도급 인사들로 연일 초만원을 이룬다. 경주 보문관광단지내 조선컨트리클럽의 경우 수용인원이 일일 5백명인데도 평일날짜 인산인해를 이루는 실태를 보이고 있다.
「허영의 별천지」서울 강남의 수입품상가 로데오거리에는 여성의류가 1백만원~2백만원 정도이고 구두 한켤레가 75만여원을 호가한다. 이 물품들은 거의 예약으로 들여오기가 무섭게 팔린다는 소문이다.
문제는 일부 졸부들이 벌이는 이러한 비뚤어진 소비형태가 이제 중산층의 모방과소비, 서민들의 자포자기성 충동과 소비로 연쇄반응을 일으켜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쓰고 보자는 식의 풍조가 만연, 절약하며 알뜰히 저축하는 이들이 우둔하게까지 치부되는 양상이다. 농촌ㆍ중소도시에 까지 소비바람이 불고 있고 아파트단지내에도 수입상품점들이 속속 들어서 성업중이다.
경북 의성군이 금년 6월 30~60세 주민 1백60명을 대상으로 소비실태를 표본 조사한 결과 군민들이 관광비 지출에 연간 51억원, 술소비에 1백20억원, 다방출입에 58억원 등 모두 2백29억원을 유흥비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지난해 추곡수매 매상액 2백70억원의 85%나 되는 금액이다.
또 상공부 통계를 보면 자동차의 경우 87년에 92%를 차지했던 배기량 1천5백cc이하 소형차의 비율이 89년에는 71.7%로 떨어지고 8%에 불과했던 중대형승용차가 30%가까이로 늘어난 것을 알수 있다.
학계에서는 현재의 무절제한 소비형태가 부동산투기 등으로 인한 불로소득에 있다고 보고 있다. 쉽게 벌은 돈이 한풀이식 소비로 터져 나오고 이것이 그릇된 과시욕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
서강대학교 조옥라 교수(사회학)는 『졸부들에의한 돈과시가 됨됨이의 기준을 물질로 만들었고 바른 가치관들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부에서는 남미ㆍ필리핀의 경우를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도 흘러 나오고 있다고 조교수는 밝히고 있다.
TV광고등 매스컴에 의한 충동구매도 과소비의 큰몫을 차지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특정상품의 소비가 마치 인간다운 삶의 조건인양 가치관을 왜곡시키고 과소비풍조를 부채질 한다는 의견이다.
광고도 공중의 자산인 전파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하나인 만큼 광고제작자나 기업주들은 시청자가 필요로 하는 올바른 상품 정보 제공에 성의를 다해야 할것으로 요청되고 있다.
악화될대로 악화되고 있는 과소비를 진정시키고 알뜰한 생활방식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들이 연구돼야 할까.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건전한 소비문화확립과 주체적인 소비의식이 문제해결의 요건이라고 제시하고 있다.또한 과소비현상을 모두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공감대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땅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을 막는 토지실명제 등의 제도적장치 마련도 선결돼야 할 문제로 손꼽히고 있다.
서울 YWCA 근로여성회관 김준희 관장은 국민들의 의식개혁도 필요하지만 이외에도 돈벌기에 급급 수입품 들여오는데 혈안이 돼있는 기업인들의 채임있는 의식, 일관성있는 정부의 경제정책 등이 함게 병행돼야 과소비가 근절될 수 있다고 전한다.
실천적인 면에서는 교회내 제단체 및 여성단체의 지속적 의식계몽운동ㆍ교육과 함께 중고품교환시장 등 검소한 생활풍토 조성을 위한 각종 실천운동방안들이 마련되어져야 할것으로 강조되고 있다.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전국70여개 여성단체들의「씀씀이 줄이기」결의 등은 무척 고무적인 운동이라 할수 있다.
김준희 관장은 우선 음식 덜버리기ㆍ분수에 맞는 옷입기ㆍ외제품 사용 안하기 등의 작은 것에서부터 절약운동이 시작되어야 할것이라고 덧붙이고있다.
교회의 입장에서 볼때도 과소비는 일종의 죄로 규정된다. 재물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영생으로 가는 방법적인 의미일 뿐이다. 복음적권고중의 하나인「청빈」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완덕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덕목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구가톨릭대학 이홍근 신부(영성신학)는 『절제ㆍ극기ㆍ희생의 삶을 사는 전통적 수덕생활은 십자가의 의미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본질』이라고 못박고 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재물을 함부로 할수 없고 모두를 위해 함께 쓴다는 의미에서도 무절제한 낭비는 근절돼야 한다는게 교회측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죄를 보속하신것처럼, 가난한 삶을 택하신것처럼 지나친 소비를 억제하고 저약하는 생활에 앞장서야 한다』고 이신부는 강조한다.
대구 계산본당 김부기 신부는『물질주의 팽배뿐아니라 이기심으로 인해 과소비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전하면서『물질을 아끼는 것은 없는 이들에게 그것을 나누는 것과도 직결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창간 27주년을 맞아 동서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조사한 각계 인사 1천5백명대상「경제의식구조」설문결과는 생각해 보아야할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응답자의 절대다수인 94.3%가 과소비현상을 인정하면서도 절반이 넘는 52.6%가 과소비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과소비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자성과 함께 삶의 질,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진정으로 짚어보아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물질이 기준이 되는 부끄러운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을 의식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되돌아 보는 자세와 함께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비우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할수있다.
누룩의 역할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어느때보다 강조되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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