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혼자 왔니?』
그믐 밤의 자정미사, 아니 정월 초하루 새벽 열두시 미사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설 때였다. 단발머리 작은 아이가 목도리를 뒤로 돌려서 앞으로 내리려 애를 쓰고 있었다. 아이는 칙칙한 바지에 검은색의 낡은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어쩌다 눈에 뜨이는 다른 아이들은 한복이나 외투같은 설빔으로 단장하고 역시 설빔으로 성장한 어른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 작고 가냘픈 단발머리 아이만이 초라한 외톨이로 보였다. 요셉은 아이의 한손이 못미치는 목도리 끝을 잡아주며 물었다.
아이는 실목도리로 목을 단단히 감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자기본당의 주일학교 학생이 분명했다. 아이의 얼굴엔 새벽한시 반의 어둠과 추위를 헤치고 혼자 집에 가야한다는 비장한 결의 같은게 어려 있었다.
『혼자 자정미사 오는것 무섭지 않았어?』
아이는 요셉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않은채 고개를 흔들었다.
『졸립지도 않았구?』
아이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입은 이미 털실목도리에 묻혀 있었다.
『장하구나 혼자 여기까지 자정미사 오고. 같이 가자. 오빠도 집이 빨래골이야』요셉은 아이의 손을 잡고 성당 문을 나섰다. 아이의 작은 손이 장갑속에서 요셉의 손을 굳게 잡아 왔다.
밤바람이 날카로운 냉기로 옷깃을 파고 들었다, 그러나 교우들은 신년 첫시간을 주님과 함께 했다는 기쁨으로 성가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교우들이 흩어져 가고있는 성당앞 골목길은 추위와 상관없는 열기만이 가득했다.
『오빠는 요셉이라고 하는데 넌 이름이 뭐지? 2학년인건 아는데 이름은 생각이 안나』
본당 자정미사가 없어서 가까운 거리의 이웃본당 자정미사에 참례한 요셉은 교우중 아는 얼굴이 없는 호젖함으로 아이를 내려다 봤다. 걸음을 한껏 천천히 옮김에도 아이는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고 둘씩 서넛씩 무리 지은 교우들은 그네들 앞질러 가고 있었다.
『성명은 이새롬, 본명은 크리스티나』입을 가린 목도리를 장갑 낀 손으로 조금 내리고 처음으로 연 아이의 입에서 투명한 목소리와 함께 입김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는 고개를 젖히고 요셉을 올려다보며 하얀 입김을 더 쏟아 냈다.
『나 선생님 알아요. 오빠 아니구 오빠들 선생님이잖아요』
요셉은 웃었다. 처음 교사회에 들어갔을때 초등부를 지망했으나 본의아니게 중고등부가 되었고 순전히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고1 담임이 된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교사의 4분의3이 여교사여서 남교사는 선택의 여지없이 중고등부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살이 아프도록 공기는 냉했으나 그 날카로운 냉기가 요셉은 상쾌했다. 그러나 상쾌한 것은 마음일뿐 몸은 얼어들고 있는듯 했다. 아이에게 춥지않으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걸음에 맞추어 한껏 느리게 걷던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조금 빨리 걸으면 추위는 그만큼 덜 느껴지게 마련이었다.
낮에는 저자거리인 어둡고 긴 골목을 벗어나 차도에 이르렀을 때는 그네를 앞질러가는 교우들조차 없게 되었다. 지나다니는 차도 드물었다. 사람도 없었다. 둘은 골목마다 환하고 넓은 차도를 따라 걸었다.
『선생님 내가 2학년인거 어떻게 알아요?』
그러지않아도 요셉은 아이의 기억을 더듬던 참이었다. 지난 여름 첫 영성체 교리가 시작될때 아이는 요란한 생떼를 부렸다. 자기는 2학년이지만 아홉살이니까 교리반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사들과 수녀님이 달래고 타일렀으나 막무가내였다. 결국 초등부 교감이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왔는데 끝내 울음을 그치지 않더라고 땀을 줄줄 쏟으며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새롬이가 오빠 얼굴 아는 것처럼 오빠도 새롬일 알지 이름은 생각못했지만. 근데 새롬이 이제 한살 더 먹었으니까 3학년 되겠네?』
아이는 다시 입김을 하얗게 쏟으며 웃었다.
『맞아요, 성체도 모실 거예요. 첫 영성체반 교리 받고』『성체가 그렇게 모시고 싶어?』
새롬이는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듯 눈을 호동그랗게 떴다. 맑고 예쁜 눈이었다. 파랗게 얼고있는 피부조차 청결해 보였다.
『왜 그렇게 성체가 모시고 싶지?』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이잖아요 성체를 모시면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는 거예요. 오빠들 선생님이 그것두 몰라요?』
요셉은 웃으면서도 가슴이 떨렸다. 이 조그만 아이의 신앙이 경탄스러우면서도 뭔가 모르게 두려웠다. 모든 것을 배우는 그대로 단단히 믿는 아이들의 무구한 천진스러움을 대할때면 그는 뭔가 모르게 두렵고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러구두 나 성체 모시면 진짜루 하구싶은거 있어요』
『진짜루 하고싶은게 뭔데?』
『……말 안해요』
『?…왜』
『선생님두 어른이니까. 어른들은 다 웃어요. 그렇지만 내 친구는 이사가서 첫 영성체도 2학년때 하구 내가 진짜루 하구싶은거 걔네 성당에서 벌써 하구있단 말예요』
요셉은 걸음을 천천히 했다. 차도를 건너 오르막의 골목길로 접어 들어야하는 삼거리였다. 비탈진 골목길에는 군데 군데 녹은 눈이 얼어 붙어 미끄러웠다.
『웃지않는다고 약속하면 얘기해 줄 수 있어? 굉장히 알고 싶다』
『안돼요 그 얘긴 신부님 될 학사 오빠한테만 해야 한대요. 신부님 안될 사람은 알아두 소용이 없대요, 선생님은 신부님 될거 아니잖아요』
요셉은 자기의 가슴에도 안차는 어린 아이를 내려다보고 큰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에는 무심한 별들이 희미하게 돋아 있었다. 단순히 웃어 넘길수 없는 무게로 가슴을 찔러온 아이의 말을 되새기며 그는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대신 크게 기침을 했다.
『새롬아 학사오빠라구 다 신부님이 되는건 아니야, 그 오빠들은 오래오래 공부하면서 신부님이 될 것인지 생각해서 정하는거야, 또 수사님도 신부님만큼 훌륭해』
『그럼 선생님은 수사님 될거에요? 수사님도 신부님처럼 복사 시킬수 있어요?』
별빛보다 맑은 아이의 눈이 야무지게 빛났다. 아이는 숫제 걸음을 멈추고 제손이 닿는 요셉의 파카 앞자락을 잡아흔들며 그가 수사건 신부건 아무튼 복사시켜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인지를 재우쳐 묻고 있었다. 답을 들어야만 다시 걸음을 옮기겠다는 태세였다.
요셉은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귀엽고 측은했다. 요즘 여학생들이 복사를 꿈꾸는건 흔한 일이었다. 오죽 복사타령을 했으면 그얘긴 신부님 아닌 사람이 알면 소용없다는 입막음까지 당했을까. 아이는 요셉의 웃음을 대답으로 받아들였는지 다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새롬인 왜그렇게 복사가 하고싶지?』
『그냥, 응- 이건 비밀인데 선생님한테만 말하는 거예요. 나는 있죠, 이담에 신부님 될건데 있죠, 신부님 되려면 복사도 해야하구, 그냥 하고싶기도 하구요』
아이의 물끼많은 투명한 목소리는 하도 진지해서 거의 울음처럼 들렸다. 요셉은 장갑의 부피안으로 느껴지는 작은 손을 다시 힘주어 잡았다. 섣불리 대답할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복사를 원하는 것은 국민학생들이고 신부님에 따라선 여학생 복사를 허락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건 그다지 심각한게 아니었다.
그러나 여고생쯤 되면 미사보를 쓰게 한 바오로가 예수님의 스승이냐고 빈정거리기도 하고 여대생 교사중에는 복음서의 어느 곳에 예수님이 여성사제를 금지한 대목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여학생들은 대개 똘똘하고 성실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은 거의가 그러한 여학생 문제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농담으로도 희망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미사보 쓰기싫고 복사하고 싶고 수녀아닌 신부가 되겠거든 사내로 다시 태어나라는 무지막지하게 거친 극언까지 나온다.
결국 똘똘하고 성실하고 용감한 여학생들은 별난 아이로 취급되어 외톨이가 되고 교회밖으로 사라진다. 여간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었다.
요셉은 어쩔수 없이 미리엄을 떠올렸다. 사제의 꿈을 버리지않고 지금은 철학과가 된 사목학과에 진학한 친구였다. 몸이 약할뿐 나무랄데 없이 매사가 단단하고 명석한 그녀는 신학공부를 계속하여 교회법이 여성사제를 인정하는 그때 서품받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나기 만하면 열띄어 강조하는 말들은 옳게 여겨졌다. 성서 역시 그 오랜 가부장제의 유산이어서 예수 머리에 기름부음으로 맨처음 메시아성을 고백한 것이 여성임에도 복음서들은 여성의 활동을 축소ㆍ은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미리엄이 성서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은폐되고 축소된 여성의 올바른 위상을 성서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요셉이 여학생들 문제에 동정적인 것은 어릴때 부터의 친구인 미리엄 때문인지도 몰랐다. 또한 지금 요셉의 손에 매달려 미끄러운 비탈길을 오르고 있는 새롬이 역시 또 하나의 미리엄일것이었다. 물론 그는 여성이 아니므로 미리엄의 고민을 다 이해한달 수는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실현 불가능한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일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특히 교회안에서 사회보다 더 심한 성차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예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가 어떤 존재였던가 그는 인류사상 유일하게 완전한 인간이었고 자유로운 인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해방자였으며 과부의 동전 한잎을 눈여겨 보아준 연민 많은 분이었다.
신의 아들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을 요셉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을 부인해서가 아니라 실감이 불가능한 부분에 매달리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분만을 추종할수 밖에 없는 인간적인 요소는 얼마든지 많은 때문이였다.
『선생님. 다 왔어요. 우리집 조기예요』아이가 가리키는 집은 산동네에서 흔히 볼수있는 시멘트 블럭 담의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녹쓴 철대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그는 아이가 이끄는대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누워있던 할머니가 몸을 일으키며 아이를 데려다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웃목에는 라면 상자와 과일봉지와 몇개의 꾸러미가 쌓여 있었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요. 아빠한테 갔어요. 선물 이만큼 사다놓구요. 이거 다 엄마가 사온 거예요. 아빠가 석탄 캐다 다쳐서 설날두 집에 못오걸랑요. 우리 엄마두 입주가정부 하기땜에 설날엔 못오는데 있죠, 아빠가 다쳐서 휴가받은 거예요.』
제집에 돌아오자 새롬이는 다른 아이가 된듯 발랄해졌다. 요셉은 아이가 조잘거리는 내용 때문에 또한번 마음이 떨렸다. 이 아이와의 만남이 다시 한번 새로운 의미로 마음을 덥게하고 있었다. 방은 누추했으나 따뜻했고 다리가 불편하다는 할머니는 웃목의 귤과 과자를 챙겨 요셉 앞으로 밀어 놓았다.
『할머니, 선생님은 있지 고등학생 오빠네 선생님인데 나 복사시켜 줄 수 있는 수사님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는 나 성당에 못입구간 설빔 있지, 선생님한테 보여주구, 그거 입구 세배 할래』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꺼내놓은 설빔은 맹랑하게도 바지 저고리와 조끼의 남자 한복이었다. 할머니가 혀를 차며 설명했다. 『얘가 치마는 안 입겠다구 하두 졸라대서, 그래두 에미가 철딱서니가 있으면 그렇게 천방지축 애 뜻을 받아주진 않을텐데 에미가 새끼나 똑같다우, 바지 조끼 설빔해달라고 조른 딸년이나 조른다고 품팔아 번돈으로 장만해온 에미나. 아무튼 선상님이 오셨으니 쟤 소원대로 세배나 받으시우, 성당에 입고 가겠다구 떼쓰는걸 가까스로 말렸으니까』
아이는 당장에 옷을 갈아입었고 꼬마는 깜찍한 단발도련님이 되었다. 아이는 할머니가 댓님치는걸 유심히 보며 기다렸다가 먼저 할머니에게 세배를 했고 요셉에게도 했다.
그는 주머니를 털어 천원의 세배값을 주고 앙징스로운 조끼차림의 아이를 천정에 닿도록 번쩍 안아 올려 준후 눈망울에 졸음이 고이기 시작하는 새롬이와 작별을 했다.
북한산 깊은 계곡 옆 산마루에 가까운 빨래골의 밤공기는 숨막히도록 차고 청정했다. 요셉은 한동안 비탈진 골목길에 멈추어 선채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바지 저고리 설빔에 담긴 아홉살 아니 열살이 된 키 작은 여자아이의 눈물겨운 소망이 목젖을 아프게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도 더 이상 망서리지 말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롬이의 눈물겨운 설빔과 미리엄의 꿈과 또다른 수많은 미리엄들을 생각할때 그는 다시 가슴이 떨렸던 것이다. 더 이상 주저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떨리는 가슴으로 고개를 젖혀 빨래골의 별 맑은 밤하늘을 우두커니 우러르고 있었다.
노순자
▨67년 서라벌예대 문창과 졸
▨74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타인의 목소리」당선
▨90년 16회「한국소설문학상」수상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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