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생명을 대상으로 다른 살아있는 생명의 양식을 길러내는 농업. 지난한해 우리농촌은 시련과 희망을 함께 겪었다. UR협상과 쌀개방, 추곡수매 등 온갖 외압속에서 우리밀살리기, 생명공동체, 푸른평화운동등 힘든 생존의 몸부림을 쳐왔다. 이제 농업의 위기는 도ㆍ농간의 문화적 격차나 차별의 차원을 떠나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 농촌의 위기는 얼마나 심각하며 왜 우리농촌은 살아남아야 하는지 새해를 시작하면서 함께 생각해본다.
<편집자 주>
「고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도 집집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몽실오르고 황소가 음메~거리는 뒷동산에 실개천이 흐르는 농촌을 연상한다.
이런 농촌, 고향이 죽어가고 있다. 아니 죽임을 당하고 있다.
죽어가고 있는 우리의 고향중 하나인 경북 의성군 안사면 쌍호마을.
안동에서 구담가는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하루에 두번 들어간다는 버스를 타기위해 2시간을 기다렸다 비포장 도로를 털털거리며 찾아온 전형적 농촌마을.
소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노인들과 붉은색 스프레이로 쓴 구호들이 첫눈에 들어왔다.
『농가부채 탕감하고 농민생존권 보장하라』『미국 농축산물 수입 결사반대』『뭉치면 전량수매 흩어지면 부분수매』등 대학가에서나 볼수있었던 선동적 구호들과 쟁취와 획득의 용어로 가득찬 벽보들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뚝배기 장맛같고 순박하던 이땅의 농민들을 무엇이 이리 변하게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마을에 들어섰더니 일흔이 넘으신 노인 몇분을 제외하곤 인적이 없어 들로 나갔다.
겨울 찬바람 속에서도 맨살로 바람을 가르며 일하는 우리네 농부들에게 순박한 미소를 기대하며 다가섰더니 얘기도꺼내기 전에 아우성이다.
『우리가 게을러서 못산다고 … 우리는 온식구가 해떠서부터 해질때까지 일한다』『농사지으면 지을수록 빚만 는다』『농사지을 사람 없고 애울음 끊긴지 오래다』『잘지어도 수입하고 못지어도 수입한다』『소팔아 공부시켰다지만 이젠 논밭팔아 공부시키기도 어렵다』『우루과이라운드는 우루루 꽝이다』온통볼멘 소리로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하기야 우리 농촌 어딜가도 이런 얘기는 당연지사가 돼버렸다.
우리 농민들은 지금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수입개방, 저곡가, 이농ㆍ탈농으로 인한 인력난, 농약중독 중노동으로 인한 작은 발병, 어려워져만 가는 교육, 의료문제 등의 괴물로부터 숨 넘어가기 직전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농업을 이렇게 피폐하게 만들었는가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다.
농촌문제 전문가들은 이를 멀리는 해방직후 미국의 구호물자 등으로 인한 대미중속적 경제구조와 본격적으로는 60년대이래 무리한 수출주도형 공업화 경향에서부터 찾고있다.
기술이 없는 후진국이 수출을 하기 위해선 선진국 외자에 의해 선진국으로부터 수입한 생산재와 기자재를 이용, 가공수출하는 저임금정책을 펼칠수 밖에 없었고 저임금정책은 그대로 저곡가 정책으로 이어져 이농 및 탈농을 부채질, 식량자급도의 약화와 농축산물의 수입자유화를 낳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우리 농정의 기본성격은 한국경제의 전체구조에서 규정된 것으로 이러한 성장정책은 농업과 공업의 상호연관을 파괴하고 국민경제에 있어 농업의 지위를 급속히 저하시켰다.
총인구중 농가인구는 80년 1천82만7천명으로 전체인구비율 28.4%이던 것이 89년에는 6백78만6천명으로 16%로 줄어들고 국민총생산중 농업비중은 80년 13.2%에서 89년 8.4%로 떨어졌다.
정호경 신부(안동교구ㆍ함창본당주임)는 이같이 농업의 지위저하가 심각한 이유는 침체되어가는 농업현실이 농민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길러내는 생명의 일꾼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무너뜨리고 돈벌이 중심의 약탈ㆍ화학농업을 부채질, 인간성ㆍ공동체성을 무더기로 파괴하여 겨레의 생명을 위협하는데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의 농심을 파괴시키고 있는 가장 큰 주범은 수입농산물로서 농축산물 수입개방의 확대는 70년대말 이후 본격화 되었다.
무리한 중화학공업화정책추진에서 파생된 수출부진과 석유ㆍ원자재가격의 폭등 그리고 임금비용의 상승 등으로 저임금 저물가 유지와 국제수지 악화에 대처하기위해 국내가보다 4~5배나 싼 외국 농산물의 수입자유화를 추진하게 된다.
특히 80년이후 5공초기 정권의 기반이 약해 대미협상력이 취약했던 시기에 수입이 가속화되어 91년까지 2백43개 품목이 수입개방되고 더욱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경제협상기구인가트(GATT)에서 97년까지 완전개방을 결정, 89년 농축산물 수입자유화율이 79.3% 90년 82.8% 91년 86.2%로 높아졌고 이제 마지막 보루인 쌀마저 개방될 실정이다.
전체 소비량의 1백%를 수입에 의존하고있는 밀의 경우 우리의 입맛이 변하면서 빵, 라면, 국수, 과자 등 우리식생활의 4분의1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쌀다음으로 중요한 먹거리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밀은 종자도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는 60~70년대의 식량증산정책이 쌀중심이었고 나머지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는 정책을 써왔고 84년에는 밀의 수매를 전면 중단 69년에 36만6천톤을 수확한 밀이 현재는 생산통계마저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결국 우리 토양의 특성상 농약을 안쳐도 돼는 우리밀대신에 농약덩어리인 수입밀로 겨레의 건강을 좀먹고 있다.
밀의 경우로 보아 직접소비용인 쌀마저 개방돼고 정부가 수매제도를 폐지하여 쌀감산정책을 편다면 농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국산 쌀가격의 4분의1에 불과한 외국쌀이 수입되면 전체 농가의 85%가 쌀농사를 짓고 있는 국내 농촌은 황폐화될 것이고 결국 우리의 목숨을 다른 나라에 맡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국내 벼농사의 포기는 농가경제의 파탄뿐 아니라 실업난과 홍수피해ㆍ환경오염을 가중시킨다.
예를들어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하면 논1백30만 정보가 갖는 23억톤의 홍수조절을 위한 댐을 건설해야하며 이를 위해서 해마다 1조원 이상 국민의 세금이 가중되어야 한다.
쌍호마을의 공소회장 김정상씨는『어차피 수입이 될수밖에 없다면 수입농산물의 이익금을 농촌에 투자하여 농업기반조성을 튼튼히 하면 그래도 싸워볼수 있지만 현재 이익금은 대기업정부자금으로 쓰는 이상 농민은 농촌을 떠날수 밖에 없다』고 피력했다.
실제 87년 이후의 수입자유화는 기존의 식품가공산업과 사료산업을 급성장시켰고 이들을 독과점하고 있는 국내 재벌들은 미국 곡물상의 판매대리역을 자청,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다.
농축산물을 수입하는 재벌은 삼성이 67개 품목, 롯데48개, 해태47개, 두산 50개, 미원 35개, 농심 15개 품목을 수입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효성, 럭키금성, 선경, 현대, 태평양, 코오롱, 쌍용, 대우 등 대부분의 재벌들이 수입에 나서고 있다.
국내 농산물보다 4~5배나 싼 외국농산물의 수입개방확대는 경지이용율을 75년 140.4%에서 90년 113%로 떨어뜨렸고 보리, 밀, 옥수수 등의 주곡 재배면적이 급격히 감소하고 비기간 작물인 고추, 마늘, 양파, 참깨등 경제성 작물의 재배면적이 급증, 과잉생산-가격폭락을 유발시켜 83년 양파 84~86년 소 88년 고추 89년 감자 90년 무우파동 등 해마다 가격파동을 겪고있다.
「농사는 모험」이라는 아우성은 여기서 나오는 말이다.
이러한 현실들은 농가를 빈농화시켜왔다. 김정상씨는『도시는 가장 한사람이 가족을 먹여살리지만 농촌은 온가족이 일해도 자식공부 시킬수 없다』고 한다. 실지 정부통계상으로도 농가의 실질소득은 도시근로자의 73%밖에 안된다.
농촌의 현실이 이쯤되자 농민들은 농촌을 버리기 시작했고 연평균 4백60만이 농촌을 떠나 농촌마을의 청년회는 60대로 구성될 판이다.
현재 우리의 식량자급도는 38%, 우리 밥상의 두끼를 외국 특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수입농축산물이란 것이 농약덩어리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있다.
미국은 가구당 평균경작지가 우리의 2백배가 되므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더 쓸수밖에 없고 자국내에서 판매되는 농산물에는 재배후 농약살포를 금지시키고 있지만 수출농산물에는 재배후 농약사용이 법으로 허용되어있다.
해충의 침식, 부패, 곰팡이 방지, 발아방지, 산도유지 등의 이유로 뿌리고 있는 농약은 밀의 경우 21종류의 농약을 재배후에만 뿌리고있고 미국 캘리포니아산 쌀은 미국산 쌀보다 오염위험성이 10배이상이라고 한다.
미국쌀에는 수확후「레두란」이라는 농약을 치는데 레두란은 쌀에 혼입시켜 야적시킨 상태에서도 80년이상이나 벌레가 붙지 못할 정도로 독성과 잔류성이 강한 농약으로 레두란 0.1PPM이 인체에 잔류하게 되면 모든 신경이 마비된다고 한다.
다시말해 온갖 맹독성농약과 중금속, 화학물질, 방사능물질로 범벅이 된 수입농축산물을 꼬박꼬박 하루세끼, 새참까지 곁들여서 죽을때까지 먹고있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 아니 겨레의 생존을 위협하고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시세니 어쩌니하는 숫자놀음으로 농촌을 죽이고 있다.
그래서 각국은 돈으로 계산될수 없는 안보적 가치, 민족의 고향으로서의 가치, 환경보전 등의 가치로 국민의 생명줄인 농업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판매가의 8배, 일본은 2배, 북한에서는 6배로 쌀을 수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89년 4월 28일 발표한 농어촌 종합발전대책은 전체 1백80만호 농가중 1백20만호의 농가를 몰락시키고 60만호정도만 상업적 전업농으로 육성하겠다는 90년대 농정의 기본정책으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농촌을 살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정부의 농촌수호의지와 정권의 자주성이 문제이며 무엇보다 농업적 가치관의 회복에 그 해답이 있다.
농업위기 문제의 본질은 본래의 농업방식, 농업의 가치관과 의미를 상실해 버린데 있다.
공업과 농업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않고 자본주의시장경제속에서 단순한 상품으로서 바라보는 농업은 결코 불리함과 위기를 극복할수없다.
생명사상과 공생의 공동체사상만이 새하늘 새땅의 건설을 가능하게 할수 있다.먹거리에 농약을 듬뿍 치면서 미국농산물을 사먹지 말라고 말할수 없고, 농약 중독으로 죽어가면서, 돈 때문에 가슴에 한을 품으면서 자식에게 농촌에 남아 농사를 지으라고 말할수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다투고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생산자와 생산자의 생활을 걱정하는 소비자가 함께 이루는 삶,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짓는 농사가 되어 농산물이 더 이상 상품이 아닐 때 수입개방 압력,공산품과의 불평등 교역, 독점자본의 횡포로부터 벗어날수 있다.
일각에서는「생명의 공동체」란 이름으로 생명과 공동체성을 외치며 농촌과 도시모두를 살리는 일,생명을 살리는 일에 나서고 있다.
「생명공동체운동」은 유기농업운동으로서 공해문제의 심각성과 농업의 위기와 생산자와 소비자가 얼굴을 마주보는 농업이라는 세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농업의 위기는 생명의 위기이다.따라서 농촌살리기엔 도시,농촌이 따로 없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농민살리기에 초교구적으로 동참해야한다. 한톨의 볍씨를 생산하기 위해선 인간의 노동뿐만 아니라 햇빛과 바람과 물과 땅과 지렁이와 미생물들과 자연생태계가 공동으로 협력해야 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세계를 실현해내는 이러한 농업이야말로 하느님 안에서 생명을 번성시키는 창조사업의 계속이기 때문이다.
쌍호마을을 방문한 기자는 이처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전쟁을 치르듯 살고있는한 농가에서 무농약김치 한사발,동치미 한그릇에 땀과 눈물로 지은 쌀밥 두그릇을「거저」먹을수 있는 환대를 받았다.
우리네 농심이 아직 살아있을 때 농촌을 살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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