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애매한 죄를 뒤집어 씌우고 회당에서 내 쫓자 예수께서는 그를 찾아가 만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미신자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영상이다. 그것은 『나에게 오는 사람은 누구든 나는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요한 6,37)라고 한 말씀의 따뜻함이며, 『지혜는 지혜에 상응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찾아 다니며…그들을 만나 준다』(지혜 6, 16)라고 한 지혜서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세상에서는 어두움에 빠진 사람보다도 빛을 따라 사는 사람이 흔히 공경에 빠진다. 예수께서는 보지 못하다가 빛을 보게 된 사람에게 「사람의 아들」에 대한 믿음을 촉구하신다. 「사람의 아들」이란 호칭은 구약시대부터 장차 세상을 심판하러 올 심판관의 대명사였고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리켜 쓰신 명칭이다. 이 말씀에 준하여 초대 교회에서는 세례때 『우주의 통치자 성부를 믿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라고 물어보는 전례를 행하였다.
그후 오늘까지 내려오는 사도신경에는 「예수 그리스도 심판하러 오실줄을 믿나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한다. 눈을 뜨게된 배내소경은 『믿습니다 주님』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 앞에 꿇어 엎드렸다. 「주님」이란 말은 히브리말 야훼라는 말의 그리스어 번역어로서 성서에서는 언제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누구 앞에 꿇어 엎드리는 행동은 성서에서 누구를 하느님으로 인정하고 경배하는 행위로 표현된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성약을 맺을 때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으며 (창세17,3) 요한복음서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한 마디로「예배 드린다」라고 표현하였다.(요한4,20~24:12,20)
예수 그리스도를「주님」이라고 부르고 무릎을 꿇는 것은 사도시대부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표시하는 첫번째 전례행위가 되었다(사도2, 36: 7, 59). 이 소경의 『주님, 믿습니다』라는 말과 엎드려 경배하는 행위에서 어두움에 헤매던 사람이 눈을 뜨고 처음에는 희미하게, 후에 명백하게 사리를 보는 빛의 세계로 나오는 영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소경이 눈을 뜨게 된 기적에서 그 사람의 3단계 영적변화의 과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눈을 뜨게 해 주었다.
그 다음 그 사람은 분명 범상치 않은 예언자일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졌고 마지막으로 그 분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경배하였다. 마지막단계의 영적은혜를 받는데에는 「믿습니다」라는 신앙이 전제되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은 이사야가 예언한 새 세상의 전개가 「소경이 보게 되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감옥에 갇힌 수인들이 자유를 얻을 것이다」(이사42,7 : 61, 1)라는 현실로 나타남을 가르치고 있다. 최후의 심판자로서 오실「사람의 아들」의 역할에 대해서 예수께서 설명하셨는데 이것은 또한 초대부터 교회의 가르침이 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얼핏 선인과 악인을 가려 상주고 처단하는 심판자로서 예수께서 오신 것처럼 들리기 쉽다.
그러나 선인이 되고 악인이 되는 것은 본인의 마음자세와 결정에 달렸다. 예수께서 구세주 그리스도로서 세상에 오신 것과 그 분이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 자체가 눈을 뜨고 보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 자체가 이미 악인으로 판정받게 되는 것이다. 진실을 제대로 보려고 애쓰는 것과 진실의 빛을 외면하는 것과는 천양지차만큼이나 선인과 악인의 차이가 큰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은 깨닫기 어려운 철리도 아니고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난사(難事)도 아니다.
그래도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알아들으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보고 또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함은 그들이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틀어 막았기 때문이다』(마태13, 10~17 : 마르 4, 10~12 : 루가 8, 9~10)라고. 빛을 택하는냐 암흑을 택하느냐는 자명한 선택 앞에서 스스로 암흑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소경이었다가 눈을 뜨고 보는 사람을 제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서도 그를 내쫓았다. 그것은 그를 보게 해 준 예수그리스도를 배척하는 행위였다. 그들이 예수를 배척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진리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요한 8, 45).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진리를 배척하는 것은 그들이 날때부터 거짓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요한 8, 43). 그들은 거짓과 탐욕에만 눈이 밝고 진실에는 눈이 캄캄하다.
여기서 배내소경이 눈 뜬것과 눈이 멀쩡하면서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는 자들과의 차이가 신앙과 불신앙이 차이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대들었다. 『우리가 눈이 멀었단 말이냐』고. 그들이 차라리 눈먼 사람임을 자각하였다면 보려고 노력하였을 것인데 눈이 멀쩡하다고 자신하고 있으니 거짓과 탐욕에는 눈이 밝을지 모르나 진실앞에는 외면하는 눈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그들은 죄속에 빠져 있는채로 남아 있을것이다. 배내소경이었던 사람은 소경됨이 자기 죄가 아니었지만 스스로 소경이 된 이들은 소경됨이 그들 자신의 탓이다.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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