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홍수가 났을 때 물구경을 갔습니다. 포플라 나무가 끄트머리만 물밖에 나와있고 그 밑으로 있어야 할 양계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과 함께 「노아의 홍수」를 생각했습니다.
며칠후 물이 다 빠진 다음에 또 가봤습니다. 이번에는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란 말이 참 실감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대로 내려 앉은 지붕이며 군데 군데 흩어진 가축들의 주검들, 그리고 쓰레기들과 함께 뒹굴고 있는 가재도구들…「폐허」란 낱말은 이럴때 쓰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여름 우연히 그곳을 지나갈 일이 있어 가다가 보니까 살림집이랑 축사들은 전보다 더욱 깨끗이 잘 정돈되고 주변에는 여러가지 파란 밭 작물들이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홍수로 인하여 땅이 더 좋아져서 작물이 저렇게 잘 자랐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역시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란 말도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파괴의 현장으로부터 새로이 일구어 낸 주인의 집념과 땀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런 홍수가 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물이란 참 신기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온통 생명을 다 쓸어 버리기도하고 또 물이 없으면 그생물이 다 죽기도 하고, 그러니 물은 생명을 죽게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오늘은 예수의 세례축일 입니다.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요르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았던 사건을 기억하며 동시에 우리 자신들의 세례성사도 함께 기억 합니다.
세례성사에 물을 사용하는 것은 참 의미있는 예식이라 생각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는 누구나 다 그분의 죽음과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과연 우리는 그 죽음 안으로 이끄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신 것과 같이 우리 또한 새로운 생명 안에서 거닐 수 있기 위함 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같은 죽음으로 그분과 합치되었다면 그 부활과도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 6, 3~5)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은 곧 죽음과 생명의 상징이며 세례성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생명에의 참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전례주년대로 우리는 지난 주일부터 주의 공현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공현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이 공적으로 들어남을 기념하는데, 성서에 기록된 사건중에서 특별히 3가지를 기억합니다.
첫째는 이교의 3학자가 탄생하신 그리스도를 찾아와 조배함으로 그리스도는 만백성의 메시아로 들어나게됨을 지난 주일에 축제로 지냈습니다.
둘째는 오늘 축일로 지내는 예수의 세례사건을 기억합니다.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의『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이제 멀지않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신다. 그분은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는 고백과 함께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는 소리가 들림으로 공적인 확인을 받고 있습니다.
셋째는 다음 주일복음으로 읽게되는 가나의 기적 사건입니다. 예수 생애의 이 첫번 기적 역시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여러 사람 앞에서 공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는 세례를 받고 이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공인을 받았습니다. 이 공인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공인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성사를 통해서 그분의 사랑받는 아들, 마음에 드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랑받고 있음이 생활에서 들어납니다.
사랑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릅니다. 사랑받는 사람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즐겁게 살 줄 압니다. 대단한 기쁨이 아니라도 생활에서 오는 사소한 일상생활 안에서 작은 기쁨들을 소중히 간직합니다.
사랑받는 사람들은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들을 받아들일 줄도 알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도 압니다. 사랑받는 사람은 결코 서두르질 않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안타까울 때에도 오히려 자신에게로 돌아와 십자가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받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지 않고 어떠한 시련중에도 희망을 갖습니다.
연전에 일산에서 물난리가 났을 때, 어떤 사람은 절망속에 매일 술만 마셨고, 어떤 사람은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만 돌려 분노하고 흥분하여 욕만 했으며, 어떤이는 행정관서를 찾아 시위하고 보상에만 신경썼지만 그중에도 많은 이들은 가족이 밤새 무사한 것 만으로 기뻐하고 의욕적으로 새롭게 시작할 궁리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홍수가 지난후 오히려 새롭게 정리된 경지와 풍성한 작물을 땀으로 일구어 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의 세례축일에 우리의 귀에도 같은 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너희는 나의 사랑받는 아들이며, 내 마음에 드는 귀한 자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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