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리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막상 일손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를 비롯, 50여만명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데도 건설ㆍ제조업등 일부 업종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 난리다.
높은 「실업률 속의 인력난」. 한국 산업 경제의 한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런 기형상은 86년을 고비로 불거지기 시작, 근자에 와서 그 영향이 산업부문 전반에 걸쳐 확산되면서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기현상은 근본적으로 우리사회의 근로의욕상실과 노동경시풍조, 일부 계층의 무분별한 과소비ㆍ향락산업번창과도 직결돼있어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는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기능인력 부족난
『만약 이런 인력난 상태가 계속된다면 멀지 않아 한국경제는 끝장날겁니다』
소규모 자동차부품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문모씨(바오로)는 요즘 한국중소제조업체의 구인난은 위기상황 수준을 넘어「갈데까지 갔다」고 진단했다.
『지금도 적정근로자의 30%수준인 20여명밖에 없습니다만 5~6명으로 공장을 운영한 때도 있었습니다. 차라리 공장문을 닫는게 났다는 생각도 수차례 했었지요』.
부산시 신평동에서 근로자 50여명을 두고 전자회로기판제조업을 하고 있는 손모씨(시몬)도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다. 『요즘 근로자들은 당장 내주머니에 돈이 들어와야 만족해합니다. 그만큼 눈앞의 이익을 찾는 성향이 강해졌다는것이죠』.
손씨는 또 『요즘 젊은이들이 참을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한탄한다. 열심히 일해서 기술도 배우고 오랜 시간을 두고 무언가 이루어보려는 끈기와 근면성을 이젠 찾아볼 수 없다고 안타까와했다.
기능인력난의 심각성은 건설업계서도 마찬가지. 국토개발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건설업계 기능인력난은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92년에 10만, 96년도엔 35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기능공들의 이직이 늘어난것도 일선 업체운영주들의 골칫거리다.
대구시 산격동에서 비철주물업을 하는 김모씨(스테파노)는 『당초 5~6명선을 유지하던 근로자들이 요즘은 2~3명도 유지하기 힘든데다 그나마 1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단1명뿐』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김씨는 그마저도 어느날 갑자기 훌쩍 떠나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있다.
■ 호화서비스업 홍수
이러한 인력난 심화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우선 이른바「3D기피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근로자들의 의식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60년대이후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산업화를 시작한 이래 성장의 견인역을 담당했던게 제조업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보릿고개가 싫어 죽기 살기로 일했던 것을 생각하면 요사이 젊은이들과는 격세지감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모섬유업체 대표는 근로자들 대부분이 수입이 더 생겨도 잔업을 하지않겠다고 하고, 구직자들이 찾아와서도 급료나 업무성질을 묻기보다 시간여유나 휴일마다 휴무하는지를 맨먼저 궁금해한다며 『도대체 우리가 잘살게 되었다면 얼마나 잘살게 되었느냐』고 반문했다.
생산직 근로자들의 의욕상실을 부추기는 요인가운데 향락소비성산업의 확산과 졸부들의 과소비풍조가 큰 몫을 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중론.
경제기획원의 「89년 서비스산업통계」를 보면 서비스산업의 매출액이 88년대비 19%나 늘어난 24조8천75억원으로 집계됐다. 3차 서비스산업 종사자도 전체 취업자의 63.4%인 52만3천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세청은 국감자료에서 89년 7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호화ㆍ사치생활자 1천4백70여명의 음성ㆍ불로소득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모두 4천4백억원의 세액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이는 1천만 근로자들의 근로소득세 총납부액의 10%를 넘는 금액이라고 하니 조사가 안된 부분까지 감안한다면 놀고 먹는 사람들의 수입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소비ㆍ향락성산업에 돈도 사람도 몰리고 「쉽게 벌고 편히 살자」는 식의 사고가 만연한 상태에서 순진한 근로자들이 이런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는 것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한달 꼬박 뼈빠지게 일해야 버는 돈을 힘안들이고 며칠이면 벌어 들이는데 「일해 봐야 뭐하나」는 생각이 당연히 들지 않겠느냐』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영남노동교육원 조우호(알벨도) 원장은 『사회계층간의 불협화음과 현사회의 과소비풍조가 노동가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새로운 정신적 동기부여가 충족되고 범국민적인 의식개혁이 따라준다면 근로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 열심히 일하자
제조업의 인력난은 곧 임금상승을 부추기고 이에 따른 상품의 국제경쟁력 감소와 수출퇴조, 그리고 경제성장율 문화는 한격경제의 파탄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경제의 위기감은 일찌감치 감지되어온게 사실이다.
한편으로 기능인력의 부족현상은 산업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규모가 팽창하면서 독일ㆍ일본 등 선진국에서 처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서비스산업의 이상비대로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술손님의 시중을 들거나 취객의 대리운전으로 몇만원을 버는 사회분위기속에서 힘든 육체노동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기능공들이 우대를 받고, 근로자를 위한 복지시책이 확충됨은 물론 사회의 왜곡된 근로관을 바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근간에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갖가지「열심히 일하기」운동에 노사가 서로의 불신을 해소하고 깊은 신뢰의 바탕위에서 함께 참여함으로써 과거 성실과 근면으로 외국인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코리언」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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