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친척이 결혼한다고해서 시골 노인 한 분이 성당 혼인미사에 처음으로 참석했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하는 짓거리들이 맘에 들지않았습니다. 어른이 왔는데도 인사도 시키지 않고 상하 좌석도 없이 앉게하고는 하나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을 하면서 자꾸 일어났다 앉았다하는 짓들도 정중한 예식 같아 보이긴 하지만 혼례식으로는 영 돼먹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혼례식이라면 신랑 신부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서 맞절도 시키고 하객들은 미리부터 한잔씩들해서 유쾌한 얼굴로 왁자지껄해야 성대한 혼례식인데 이건 무슨 서양무당을 데려다가 주문이나 외는 것 같이 하더니, 주욱 줄을 서서 드디어 잔치 음식을 얻어먹는 모양인데 따라 나가봤더니 쬐끄만 과자 하나씩 주길래 받아 먹어보니까 원 맛이라고 네맛도 내맛도 없는지라, 그래도 음식을 먹었으니 자리에 앉아 점잖게 담배를 한대 피워물었더니, 어렵쇼 젊은 녀석이 하나와서 밖으로 나가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런 나라망조가 어디 있겠는가?
밖에 나와 분을 삭이며 거푸 몇 담배 피고 보니 식은 다 끝났다는 데 모두 사진을 찍고 하더니 훌쩍 신랑 신부는 차를 타고 어디를 가버리는지라 물어 봤더니 결혼식이 끝나자 마자 망칙하게 멀리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는 대답밖에…하도 기가 막혀 당사자 부모 되는 사람들이 집으로 가자고 하는 것도 신랑 신부 없는 잔칫 집에 무슨 절 받을 일도 없이 싱거운 일인가 싶어 뿌리치고 그길로 투덜대며 시골로 내려와버렸습니다.
장터 단골집에서 막걸리 한사발 시원하게 들이키는데 주모가 『오늘 성내 잔칫집에 가셨다더니 제대로 대접은 잘 받았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영감님 왈, 『잔치라니 그런잔치 또 처음이라네. 술은 무당이 제 혼자 마시고 나는 아무 맛도 없는 안주만 한점 얻어먹고 왔다네』하더랍니다. 역시 잔치에는 술이 있어야 제격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성경에는 예상보다 손님이 너무 많았던지 잔치도중에 술이 떨어졌습니다. 주인은 이미 이렇게 될줄을 진작부터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아하니 친척뻘되는 젊은 예수가 제자라고 하는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와서 함께 마시고들 하는데 원래 계산에도 없던 사람들이라 음식이 모자랄 것을 예견하고 겉으로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눈치 대접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불안하고 조마조마했겠습니까?
마침내 올 것이 왔습니다. 과방으로 부터 술이 떨어졌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잔칫집으로서는 손님을 청해놓고 막상 청한 손님들은 제대로 대접도 하기전에 술이 떨어졌으니 이제 잔치 주인은 망신 당할 일만 남았습니다. 내가 잔칫집 주인이라도 화가 나겠습니다. 이런 경우 눈치대접을 받는 예수의 일행때문에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도 심히 불안했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잔칫집 주인도 아닌 마리아가 나서서 예수께 술이 떨어졌으니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상의했을 것입니다. 이 상의는 예수에게 모종의 책임을 지라고하는 추궁의 의미가 있을 법도 합니다. 그러니 예수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항아리를 물로 채우라고 했을 것입니다.
불행중 다행한 것은 그자리에 마리아와 예수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덕분에 잔칫집 주인이나 신랑 신부는 수치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주인이 예수의 일행을 원망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예수 일행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술은 모자랄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으로 예수는 생의 첫 기적을 이 혼인 잔치에서 행하게 됩니다.
『오! 어머니 마리아의 위대한 힘이여!』모성으로 사랑하시는 마리아께 순종하신 예수의 기적을 통하여 또한번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이 공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의 어머니 되시는 마리아의 뜻에 우리도 순종한다면 우리도 하느님의 아들임이 온 세상에 들어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 났기에 예수와 함께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십니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마리아를 모시고 있는 한 어떤 낭패 가운데서도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현존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신앙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고 또는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며 여러가지로 세상살이에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 주님을 원망하거나 또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주님을 문득 문득 원망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세상살이에서 오는 제반 인간적 유혹 가운데서도 때로는 지치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세상을 혹은 어떤 사람을 원망하고 있을 때에도 그리고 분노가 치밀어 이성을 잃을 지경에 도달하더라도, 아무도 만나기 싫어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을 때에도 그분이 함께 계심을 확인 한다면 결코 낭패를 당하거나 고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어머니신 마이아와 상의합시다.
한때 우리가 원망했던 바로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잔칫집에 평범한 한 젊은이가 와있듯 표나지 않게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신 그분을 신뢰합시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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