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壬申)의 새해가 밝아 왔다. 동해의 지평선에 여명의 햇빛이 환하게 삼천리 강산 온 누리를 비치고 있다. 격변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원히 뒤로 물러난 신미년을 아쉬워하면서 밝아오는 새해의 햇빛에 대망의 임신년에 대한 기대를 걸어 본다. 그러면서도 신미년의 얼룩진 역사와 사회의 뒷모습이 눈에 어른거리어 잠시 발을 멈추게 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왔다. 국민소득이 백불도 안되는 것을 육천불로 올리고 몇억불 안되는 수출을 칠백억불을 넘게 하여 세계에서 12번째의 교역국이 되었다. 북방 외교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동구와 소련과도 국교를 맺어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격상시켰다. 또한 소련대국이 무너져 빈족(貧國)으로 전락하여 다니엘 벨이 예언한 대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붕괴되고, 남북 불가침합의서와 비핵선언으로 남북에 화해무드가 형성되어 가기까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제는 안에 있다. 이윤추구에 급급한 재벌의 몰염치한 꼴이나 물가앙등이나 실명제 등 정책의 실정으로 멀어진 정부당국, 국민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으로 이합집산하는 정계, 불로소득으로 치부하여 들떠 과소비하며 뽐내는 졸부들, 나도 너도 그 뒤를 따라 과소비의 대열에 서서 날뛰는 사람들, 돈이면 마누라나 어린애도 팔아먹는 몰염치한 등 이루 다 들 수 없는 상황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난한 자와 핍박받는 자를 잊고 선민의식과 권위주의에 빠져 배타와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종교계나, 사치와 낭비를 극대화해서 선전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내용으로 청취자를 현혹시키는 방송이나 신문 잡지도 그 예외는 아니다.
왜 물질적으로는 풍부해 졌으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이렇게 황폐화 되었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모두가 남과 같이 잘 살려고는 기를 쓰면서도 소중한 것을 성취시키기 위해 자알 살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는 누구를 탓하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 너 나 할것없이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면서 임신년의 올해를 가늠해 봐야 할 것이다.
먼저 잘 살라고 기를 쓰지말고 자알 살라고 전력을 다하는 일이다. 요새 명동이나 강남에 가 보면 건물이 다양하게 서 있어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리로 된 건물, 피라미드형의 건물, 붉은 벽돌로 된 고풍스러운 건물 등 제각기 다양하여 옛날의 시멘트의 획일에서 벗어나 개성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도 돈이나 물질에 송사리떼와 같이 몰려 보기싫은 꼴을 보이지 말고 제각기 가장 소중한 것을 이루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는 장인정신에 불타는 삶을 이루어야 한다. 그림을 그리든, 고기잡이를 하든, 선박수리를 하든, 연구를 하든 그것이 소중하면 거기에 온 생애를 바치는 자세가 절실하다. 이걸 돈이나 권력, 일류대학, 크고 잘입고 먹는데에다 몰려가니 정신부재의 오늘의 형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소중한 것을 성취하는 자알 살라는 자세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은 우선 내탓이오 하면서 스스로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신미년의 보기 싫은 여러 현상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정책의 잘못도 있고, 재벌의 부도덕도 있고 졸부들의 과시욕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런 데에 휘말리고 그렇게 되고 싶어하고 그 뒤를 쫓아가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외에 분에 넘치게 돈을 쓰는 것도 바로 내가 잘못하고 있는 일중의 하나이다. 먼저 내가 과연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가, 나는 가족과 집단의 이기에 빠져 있지는 아니한가, 내 아이들 내집만을 위해 남은 잊고 있지는 않았는가.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은 성찰(省察)을 해 볼 일이다.
세번째는 이상은 멀리 보며 땅을 딛고 벽돌을 쌓듯이 자기를 가꾸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세계 역사를 뒤바꾸어 놓은 고르비는 농민 출신이고, 영국의 수상은 직공 출신이며, 바웬사는 노동자 출신이다. 이들이 거기에까지 이르기 위해서 얼마나 멀리 바라보면서 벽돌을 쌓듯이 자기를 가꾸어 왔는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온 열매가 바로 그들이 누린 영광으로 나타난 것이다.
끝으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일이다. 말보다 실천이 앞서야 수신제가하고 치국평천하하는 일이 된다. 실천궁행(實踐窮行)이란 바로 자기를 갖추고 나서 고개를 든다는 말이다. 천주교교회는 풍부해지고 신도는 늘었지만 가난한 이와 눌리는 사람과는 멀어졌다는 말씀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선택된 사람만 입으로 신자의 맹서를 외우고 사는 것이 아니고 정말 조금이라도 빈자와 버림 받은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참다운 신도라고 할 수 있다.
임신년의 여명은 이런 것을 다 씻어주고 어기차고 발랄한 한해가 되도록 축복해 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 축복을 받도록 나부터 하루하루 성찰하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나날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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