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난한 이들의 기쁨이신 성모’, 19세기.
성모님께서 온갖 고통과 슬픔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중앙에 계신다. 성모님은 천상에 서 계시지만, 지금도 우리 가운데 항상 함께하고 계신다는 의미다. 팔은 좌·우로 벌려, 한 손엔 빵을 들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다른 한 손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성모님 좌·우 위의 공간에 있는 하얀색의 띠 안에는 ‘헐벗은 이들에게 옷을 주시는 분’과 ‘병든 이들을 완치시켜 주시는 분’이라는 성모님의 호칭이 쓰여 있다. 이 글귀대로, 성모님의 왼쪽에는 천사가 벌거벗은 이들을 천으로 덮어주는 모습을 묘사했다. 반대편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로 고통받고 슬퍼하는 이들을 천사들이 성모님께 인도한다.
성모님의 머리 위 구름 속에서는 하늘과 땅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성모님과 그 주위의 모든 이들을 축복하고 계신다.
‘모든 슬퍼하는 이들의 기쁨이신 성모’라는 이름은 17세기 말에 붙여졌다. 러시아 모스크바 총대주교 요아킴의 누이가 이 형태를 가진 이콘의 한 사본을 통해 치유되면서 이 이름으로 성가가 작사·작곡된 것이 계기였다.
그런데 이 이콘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1888년에 있었던 기적 때문이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에는 황실에 필요한 제품을 제작하던 유리공장이 있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정교회가 국교였기에, 사람들이 수시로 기도할 수 있는 공공시설이 마련돼 있었고, 개인 주택들에도 작은 경당을 갖추고 있었다. 이 유리공장에도 작은 경당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1711년에 모스크바에서 가져온 ‘모든 슬퍼하는 이들의 기쁨이신 성모’ 이콘이 걸려 있었다. 그 앞에는 작은 헌금함이 놓여 있었다. 심한 가뭄과 질병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던 1888년 7월 23일 밤, 벼락이 성당 지붕을 뚫고 들어와 이 성화 앞에 놓인 헌금함을 강타했다. 이때 헌금함이 파괴되면서 그 안에 들었던 돈들이 튀어 올라 사방에 뿌려졌는데, 그중 가장 작은 단위인 폴루쉬카(코페이카) 동전 12개가 이 성화에 달라붙었다. 이는 성경에서 가난한 자의 보잘것없는 헌금을 하느님께서 더 기쁘게 받으신다는 말씀처럼, 당시 가장 가난하고 고통받던 이들의 헌금을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받아주심을 드러내 보이는 기적이었다.
벼락으로 인해 성당 내부 벽은 불탔지만, 이 이콘은 손상되지 않고 남았다. 이후 이 성화 앞에서, 많은 병든 이들이 치유되고 위로를 받는 놀라운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 제자들과 성모님을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맺어 주셨기에,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어둡고 비참한 슬픔에서 끊임없는 기쁨으로 인도해주고 계신다.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 과정 등을 수학한 후 디플로마를 취득, 이콘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