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하고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제 ‘행복’ ‘사랑’ ‘낭만’ 등의 감성적 단어들은 손에 잡을 수 없는 파랑새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꿈결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점차 아득히 멀어져가는 듯한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하얀 새, 피아노, 모자, 왕관, 하트, 바이올린 등의 오브제로 채워진 정일(세바스티아노·서울 반포1동본당·사진) 작가의 화폭에는 사랑과 동심의 꿈이 가득하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잊었던 아름답고 낭만적인 동화의 세계, 상상력으로 충만한 서정의 세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가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주제로 서울 평창동 이정아갤러리(LJA Gallery)에서 2017년 개인전을 여는 중이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오랫동안 정 작가에게 예술적 감성의 근원이 된 소재다.
“‘어린 왕자’를 전시 테마로 준비하면서 40여 년 전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온통 마음이 들떴다”고 털어놓은 정 작가는 “마치 관계가 소원했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반가움처럼, 그리운 애인과 마주칠 때 사랑의 감정을 듬뿍 나누는 것처럼 겉치레를 떨쳐버리고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났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모자, 하얀 새, 흔들목마 등 특유의 형상들을 통해 어린 왕자의 감성을 그림 안에 녹여냈다. ‘MON AMI’(친구)에서는 마치 소복소복 눈이 내리는 듯한 배경 속에 누구나 한 번쯤 갖고 놀았을 챙 넓은 마술사 모자와 삼각형을 이은 듯 뾰족뾰족한 왕관 등을 모았다. ‘스토리 가든 II’는 마치 어머니의 장식장 같은 붉은 색 가구가 십자가, 하트 등 다양한 기호와 도형으로 꾸며져 있다. 어릴 적 이야기의 보물 창고 같은 느낌이다.
정일 작 ‘Reve de gaston’.
무엇보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난해하지 않다. 편하고 따뜻하다. 선함과 평화로움의 메시지가 읽힌다. 그가 지향하고 있는 가톨릭 신앙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사색보다 검색을 많이 하고, 새소리 보다 SMS의 신호소리가 더 익숙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획일화되고 사회적 잣대에 길들여져 버린 세태 안에서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되돌려 놓고 싶은 마음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정 작가는 일상의 힘을 이야기했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자칫 단조롭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순간들은 우리의 삶 안에서 매우 심오한 부분들”이라면서 “그림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진정한 내 것이 무엇인지 끄집어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립경인교육대학교 미술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일 작가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카셀예술대학(Kassel Gesamthochschule)에서 수학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활동했으며 40여 회의 개인전과 400여 회의 국내외 단체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전시는 3월 28일까지.
※문의 02-391-3388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