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첫 주일 제1독서로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께서 금하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 먹고 죄를 범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1독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종 하느님은 왜 선악과를 심어놓으셔서 인간에게 죄의 여지를 남겨 두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선악과란 하느님께서 인간이 걸려 넘어지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피조물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피조물이기에 하느님과 달리 넘지 말아야 할 선, 곧 제약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선악과입니다. 유대인들은 선악과가 율법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창세기는 뱀이 유혹하여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뱀은 하느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꾸어 여인을 유혹합니다. 하느님은 분명 선악과나무를 제외하고는 “동산의 모든 나무를 따 먹어도 된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창세 2,16) 하지만 뱀은 “하느님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하였다는데 정말이냐?”고 묻습니다.(창세 3,1) 그러면서 하느님 말씀을 시험해 보라고 유혹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꾸어 누군가로 하여금 하느님을 시험하게 만드는 것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혹 사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악마는 시편 91,11-12를 인용하여 예수님에게 하느님 말씀을 시험해 보라고 유혹합니다.(마태 4,5)
예수님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지만, 첫 번째 여인은 넘어가고 맙니다. 여인은 하느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던 남편도 같은 잘못에 빠지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 1독서 창세기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첫 사람이 죄를 짓게 되어 세상에 죄와 죽음이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이를 우리는 원죄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첫 사람에 대한 원망이 듭니다. 하지만 로마 5,12는 첫 사람이 죄를 지은 것처럼 “모두”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곧, 모두에게 죽음과 고통이 주어진 이유는 첫 사람의 탓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첫 사람처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죽음은 첫 사람만의 탓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탓입니다.
첫 사람을 통해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과 달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로운 선물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야기하듯이 우리와 똑같은 유혹을 받으셨지만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아버지의 뜻에 따르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모든 이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써 모두에게 무죄 선언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공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희생으로 무죄 선언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유혹을 이겨내고 오직 하느님께 충실히 살아갈 때 비로소 완전한 무죄 상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여러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순 시기가 될 때마다 우리는 특별히 기도, 자선, 단식을 통해 절제하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자 합니다. 사순 시기를 맞이하는 지금 다시 한 번 아담과 하와가 걸었던 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었던 길을 함께 걷겠다고 다짐합시다. 세상을 죄로 물들게 했던 첫 사람들의 길이 아니라 은혜로운 선물로 세상을 가득 채우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나섭시다. 그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된 무죄 선언이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모두에게도 영원한 무죄 선언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