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이 난무한다. 혼란스럽다. 주님은 이 시대에 어떤 길을 열어 보여주고 계신지,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인지 적인지…. 어디를 둘러봐도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시대의 징표를 쉬 분별하기 힘들다.
“창조주 하느님의 눈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지 먼저 생각하는 게 참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사회학자이자 통계 전문가인 오세일 신부(예수회·서강대 사회학과장)의 눈길은 서울 광화문 광장 어딘가를 더듬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이른바 촛불집회와 맞불집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 시국과 관련해 쏟아지다시피 하고 있는 질문들을 우리 시대의 징표로 봤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주님의 자리에 ‘국가’라는 우상을 세워두고 있는 현실이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입니다.”
주님의 뜻, 복음적 가치가 아니라 주관, 사심, 사익 등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우선시하는 세태를 아프게 꼬집었다.
“드러난 ‘불의’조차 왜곡하는 목소리에 단호히 맞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시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오 신부는 ‘초월자’이신 하느님의 실재, 아울러 그분을 향한 ‘예언자’의 존재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지고지선의 가치를 자신이 믿고 따른다는 초월자 하느님에게서 찾지 않는데 혼돈의 뿌리가 있습니다.”
신앙인들조차 말로는 ‘초월자’를 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자리에 ‘국가’라는 우상을 두고 섬기고 있다는 소리다.
국가의 최고권력마저도 초월해 있는 절대자 하느님이 사라져버린 현실에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가 있다는 게 오 신부의 진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이 약합니다. 삶의 자리, 그 복잡한 현실 한복판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맛들이는 영성체험이 없으면 신앙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 체험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가 맞불집회에 나가는 것은 하느님 체험처럼 민주주의 체험과 역사에 대한 ‘성찰적’ 의식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이 최종적 준거가 아닙니다. 사회에 대한 교회 가르침 가운데 으뜸은 인간존엄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다수를 내세워 인간존엄성을 무시하고 훼손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게 그리스도인들의 예언자적 역할이라는 것이다. “격동의 시기 민족과 국가의 위기 앞에서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온전히 함께 십자가를 지고 동참하는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정교분리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미국 헌법에서도 여실히 나타나듯 종교가 정치권에 개입하는 ‘종교적 기득권’에 묶여있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가르침”임을 분명히 했다.
이른바 촛불과 맞불이 부딪히는 현실, 꼬일 대로 꼬인 정국 해법은 의외로 쉽게 얻어진다. 눈이 새롭게 열리는 것이다. 주님만을 향해.
“오늘날 시대정신은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인 사랑과 관심’을 표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마태 25, 40), 보다 더 가난한 이들의 인권과 권익이 유린당하거나 침해당하지 않도록 창조주의 관심을 공유하는데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최고권력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쏘아 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아프게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