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사순 시기에 빠질 수 없는 기도다. 교회의 오랜 전통인 ‘십자가의 길’은 우리 신앙선조들도 바쳐온 기도이기도 하다. 선조들이 바치던 ‘십자가의 길’을 찾아 원주교구 풍수원성당을 순례했다.
강원도 횡성. 산세를 따라 굽이굽이 휘어진 국도를 타고 산길을 오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언덕을 오르니 붉은 빛깔의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성당이 보인다. 풍수원성당이다.
풍수원본당은 1888년 강원도 지역에 처음으로 설립된 본당이다. 1801년 신유박해,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박해를 피해 모인 신자들이 뿌리내린 교우촌이기에 그 역사는 더욱 깊다. 성당 역시 1910년 세워진 건물로 옛 신자들이 기도하던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성당건축 자체나, 옛 제대의 모습 등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성당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은 옛 신자들의 기도가 피부에 닿듯 느껴지는 성물이다.
‘예수 죽을 죄인으로 판단함을 받으심이라’
풍수원성당 ‘십자가의 길’.
오늘날 우리가 바치는 ‘십자가의 길’의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에 해당하는 문구다. 성당을 건축할 무렵 마련한 이 ‘십자가의 길’은 100년 전 옛 신자들이 사용하던 표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바로 옛 신자들의 기도서 「천주성교공과(天主聖敎功課)」에 실린 ‘십자가의 길’, 즉 ‘성로선공(聖路善功)’에 따른 것이다.
「천주성교공과」는 1837년 순교한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가 누구나 쉽게 기도를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우리말로 편찬한 기도서다. 풍수원성당 유물관에도 본당 신자들이 사용하던 「천주성교공과」가 전시돼 있다.
신앙선조들은 ‘십자가의 길’을 ‘성로선공’이라 불렀다. 의미만 생각한다면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형장인 골고타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간 길을 성스럽게 이르는 ‘성로’만으로도 충분했다. 또 기도와 선행을 함축해 칭하던 ‘신공(神功)’이란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십자가의 길’에 만큼은 ‘선공’이라는 말을 붙였다. 선공은 선행이나 선업(善業), 신앙을 바탕으로 한 존경할만한 행동 또는 찬양할만한 업적을 뜻한다. 신앙선조들은 ‘십자가의 길’을 그저 입으로 외는 기도로 여긴 것이 아니라, 예수의 수난과 고통, 죽음을 묵상하는 ‘실천’으로 여겼던 것이다.
풍수원성당 유물관에 전시된 「천주성교공과」.
이런 신앙선조들의 마음은 「천주성교공과」에도 잘 나타난다. 「천주성교공과」는 “예수의 십자가상에서 받으신 고난을 묵상함으로 마음이 감동하여 허물을 고쳐 자기를 새롭게 하며, 혹 의덕을 보존케 한다”면서 ‘십자가의 길’의 수양적인 측면을 조명했다. 또 “도무지 이 선공(십자가의 길)이 가장 천주의 뜻에 흡합한(흡족하고 알맞은) 바”라면서 “연령(煉靈)을 구하기에 크게 돕는 바”라고 ‘십자가의 길’의 공로를 설명하고 있다.
신앙선조들을 기억하면서 성당 ‘십자가의 길’에서 ‘성로선공’을 바쳤다. ‘성로선공’은 오늘날 ‘십자가의 길’과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각 처에서 묵상 시에 한 사람이 말하는 묵상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처의 묵상에 대한 응답을 함께하는 이들 모두가 합송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현대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와 표현들이 많아 기도를 바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기도문 자체에 운율이 있어 오히려 기도하는 데 편안함이 느껴졌다. “깊이 내 마음에 새겨 사무치게 하시며, 깊이 내 마음에 새겨 사무치게 하소서”, “긍련히 여기시며 긍련히 여기소서”와 같이 각 처 묵상 뒤에 바치는 기도문에는 같은 문장을 2번 반복하는 방식으로 그 중요함을 기억하도록 이끈다.
또 마땅히 사랑해야 할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은 일을 슬퍼하는 태도를 말하는 ‘상등 통회’나 다시 죄를 짓지 아니하기로 결심함을 일컫는 ‘정개’ 등 신앙선조들이 사용하던 옛 표현들을 곱씹게 해줘 묵상에 도움이 되게 했다.
‘성로선공’을 바치고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14처의 합송 끝자락이 머리를 맴돌았다.
“예수와 한가지로 살고 예수와 한가지로 죽어, 영원히 오주 예수와 서로 떠나지 않게 하소서.”
기도문 외는 일은 마쳤지만, 성로선공은 끝이 아니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짐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