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의지’가 더 충만하다. 사순 첫 주간, 예상했던 고충들이 이어졌다. 의외의 복병들과도 맞닥뜨렸다. “뭐 대충 40일 떼우면 되는거 아닌가?”, “그 정도야 평소에 실천해야지, 굳이 사순 기간에…” 지적의 목소리들이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쉽게 하기 어려운 일들이지, 끝까지 힘내”, “실천이란 게 늘 막연했는데, 나도 기자들 체험기 읽으면서 함께 해보려고…” 격려의 말에 더욱 의지를 불태워본다. 예수님, 보고 계시죠?
■ ‘금연, 니코틴 시계 멈추기’ - 남승현 수습기자
“선배들 ‘담배 피우고 싶지 않냐’ 묻지 마세요… 정말 죽을 맛입니다”
아침이다. 슬며시 눈을 뜨자 어찌된 일인지, 쌓여있는 책 틈 사이로 담뱃갑이 보인다. 방 안에 있는 담배와 라이터는 모두 버렸는데! 마지막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나 보다.
하필 다른 때도 아닌 아침이라니. 담배를 피면서 하루를 시작하던 습관 때문에, 이제 아침은 하루 중 가장 힘든 때가 됐다. 책 사이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 들자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는 마음에 열어보니, 살포시 기울어져 있는 담배 한 개비가 보인다. 머릿속 생각보다 손이 더 빨랐다. 어느 새 그 한 개비는 손가락 사이에 자리 잡았다. ‘아뿔싸’. 눈을 질끈 감고 두 동강을 냈다. 힘든 하루가 예상됐다.
예수님께서는 단식할 때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말라고 하셨다.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금연을 시작한 지 일주일 조금 지난 시점, 나는 누가 봐도 짜증나고 힘들어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담배의 유혹을 떨쳐내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인데, 주변 사람들의 관심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서로 짠 것처럼 나를 볼 때마다 ‘담배 피우고 싶냐?’는 말을 한다. 왜 안 피우고 싶겠나. 선배와 동기 기자들의 ‘닦달’은 더 심하다.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답답한 마음에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가려 하면, ‘담배 피우러 가냐?’고 다그치듯 묻는다. 다시 들어오면 ‘담배 피우고 왔냐?’고 되묻는다. 이런 ‘압박’과 같은 관심 때문에 담배 생각이 더 난다.
나의 니코틴 시계는 누구보다 정확하다. 평균 40분마다 울리는 시계 소리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린다. 이 시계는 취재 현장에서 가장 많이 울린다. 특히 취재원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늦어지면 극에 달하는 경험을 했다. 어느 날 취재원이 약속시간 보다 30분 늦는다는 연락을 해왔다. 기다림을 짧게 하는 데는 흡연이 최고다. 하지만 담배가 없으니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차라리 정신없이 바쁘게 일해 담배 생각조차도 안 났으면 하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게 없다.
취재 후엔 커피 한 잔 할 기회가 생겼다. 남들 같으면 그런 여유를 즐기겠지만, 나로서는 엎친데 덮친 격이다. 커피와 담배는 묘하게 잘 어울리는 연인 같은 사이다. 흡연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사순 시기 동안 커피는 하루에 한 잔만 마시기로 결심했었다. 금방 나온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단박에 마셔버렸다.
3월 1일 재의 수요일, 나는 담뱃재를 버리고 축복받은 재를 이마에 얹으면서 새로운 회개를 다짐했다. 담배 한 개비를 물어 피우는 그 단순한 행동을 끊었을 뿐인데, 왜 온 몸의 세포들과 생각들은 ‘담배’에만 쏠리는지…. 그동안 나만을 위한 즐거움이, 얼마나 내 삶 깊숙이 뿌리박혀있었는지 새삼 느낀다.
한 주간 금연하며 모은 돈은 한국카리타스 해외원조를 위해 기부했다. 뭔가를 이뤘다는 생각이 들자 고단한 몸과 마음에 조금은 생기가 돈다. 다음 주엔 어떤 상황들이 펼쳐질까.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 성슬기 수습기자
우산 살까 망설이다 비 맞고 취재하던 날… 함께 쓰자 손짓하던 수녀님 한 우산 아래 행복 느끼고
2,500원. 사순 체험을 시작하고 가장 행복했던 날 사용한 금액이다. 지하철 왕복 교통비다. 그날,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야외미사를 봉헌 중인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이 없던 나는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자 편의점으로 냉큼 달려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다. 정말이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생각났다. 신용카드가 없었다. 사순이 시작되기 전날, 이미 잘라서 버렸다. 현금을 꺼내다보니, 너무 충동적인 구매가 아닌가 망설였다. 비, 좀 더 맞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수첩이 젖어 꼬깃꼬깃해져 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툭툭’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꽤 큰 검정 우산 아래 수녀님 세 분이 함께 있었다. 한 수녀님께서 우산을 같이 쓰자는 손짓을 했다. 네 명이 하나의 우산 아래에서 차가운 빗줄기를 피했다. 그 우산이 마치 하느님 나라 지붕처럼 느껴졌다.
지출을 참는 순간들. 모든 순간이 특별했던 건 아니다. 봄 분위기 가득, 화사한 쇼윈도를 지나칠 때면 절로 눈길이 갔다.
보통의 가정에서 지출하는 항목은 내 은행 가계부 지출 항목 기준으로 볼 때 크게 11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중에서 2017년 2월까지 지난 세 달 간 내가 지출한 항목은 총 9가지다. ▲식비 ▲통신비 ▲교통비 ▲생활용품비 ▲의복·미용비 ▲건강·문화비 ▲경조사·모임비 ▲저축·보험비 ▲기타비(기부금 등). 나는 사순 시기 동안 이중에서 4가지 항목, 식비와 교통비, 의복·미용비, 모임비 등에서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중이다.
간식과 외식은 아예 없앴다. 동행취재가 없는 날이면 도시락을 싸오기도 했다.
모임비는 아예 안 쓰기가 어려웠다. 어지간한 약속은 예수부활대축일 이후로 미뤘다. 하지만 취업했다고 2년 만에 연락 온 친구와의 만남은 거절하기 힘들어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다행히(?) 취업한 그가 한 턱 냈다. 사회초년생인 나로서는 의복비도 소비 유혹을 참기 쉽지 않은 항목 중 하나다.
이쯤에서 조용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택시비로만 1만6200원을 지출했다. 교통비 긴축을 위해 스마트폰에서 택시 앱을 곧바로 삭제했다. 아예 없애지 않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나의 편의를 버리지 못할 거 같았다.
유명 심리학자가 TV 강연에서 “행복해지려면 경험을 위한 소비를 해야 하고, 소유물을 샀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강도도 약하고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 꼭 ‘돈을 써야’ 행복한 순간을 만들 수 있을까? 문득 검정 우산 안에서 본 풍경이 떠올랐다. 한 수녀님은 어린아이가 비에 젖지 않도록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있었다. 또 다른 신자는 비를 맞으며 성체를 분배하고 있던 신부님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드렸다. ‘내 우산’을 사서 썼으면 보지 못했을 배려들이었다.
■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 - 권세희 수습기자
“아, 커피는 머그컵에 주세요”
과대포장을 줄이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고민에 빠졌다
“포장해드릴까요?”
고마운 말이다. 우선 구매한 물건을 들고 이동하기가 쉽다. 보기엔 더 좋다. 하지만 ‘쓰레기 줄이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반갑지 않은 말이 됐다. 편하고 보기 좋은 그 포장이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드는지 세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친구가 사온 테이크아웃 커피를 보자 ‘아차’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 ‘이것도 과대포장이 아닌가.’ 커피 한 잔을 위해 종이컵뿐 아니라 컵 뚜껑과 컵 홀더, 핸드캐리어까지 ‘거대한’ 일회용품이 사용된 것이다.
우리 가족들이 사순 체험을 1주일정도 하면서 공통적으로 의식한 것은 ‘포장이 너무 과하다’라는 사실이다.
각자 쓸데없는 포장을 피하려고 보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라면서 한숨을 쉬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저녁거리를 사러 대형마트에 갔다가 거의 모든 식재료들이 포장 돼 있는 걸 보고 망연자실했다. 대학생인 동생은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 택배를 받아 뜯어보곤, 엄청난 쓰레기양에 놀랐다. 동생이 산 물건은 비닐에 포장돼 종이박스에 들어 있었다. 그 종이박스는 다시 에어캡에 싸여 더 큰 택배박스에 담겨 있었다. 평소엔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이중 삼중 포장이었다.
‘내가 그동안 버린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쓰레기통에 넣은 이후론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사라진 줄 알았던 쓰레기들은, 사실 사라지지도 않았고 여전히 버려져 있었다. 최근 태국에선 1킬로미터 길이에 300톤의 무게를 가진 쓰레기 섬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 기이한 섬을 이룬 것은 다름 아닌 무분별하게 버려진 플라스틱과 비닐이었다.
가족들은 불편함을 해소하고 쓰레기 배출을 지양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어머니는 장바구니를 들고 전통시장을 찾았다. 밤늦게도 이용할 수 있는 대형마트와 달리 다소 불편함이 있었지만, 1차적으로 주방 쓰레기가 크게 줄어들었다. 직장을 오가며 카페에 들르는 게 일상이었던 나와 아버지는,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주문할 때마다 ‘머그컵에 주세요’라는 말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텀블러도 이용했다. 그러다보니 일회용 ‘컵 홀더’가 낭비되는 상황 또한 심각하단 걸 알았다. 수소문하다 천으로 만든 컵홀더를 찾았다. 나만의 것으로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디자인도 다양한 천 홀더를 보곤, ‘이걸 왜 이제 알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좌충우돌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것들은 대부분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었고, 그것을 줄이려니 생활이 불편해진다. 반면 우리가 배출하는 쓰레기들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나마 영영 썩어 없어지지 않는 쓰레기들도 있다는 반성을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드디어 하느님께서 만든 세상에서 지켜야할 것들과 문제를 만드는 것들을 생각하는 여정에 본격적으로 올라섰다.
남승현·성슬기·권세희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