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에 소재한 수원교구 성대건안드레아 능평성당 제단 벽면에는 태피스트리 작품 ‘미완의 면류관’이 걸려 있다. 섬유예술가 송번수(베네딕토·74) 작가가 제작한 이 작품은 섬유미술과 종교미술, 공예와 회화가 어우러진 최고의 접점이자 현대섬유미술과 종교미술의 만남에 새로운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국내 성당 제단 벽에 설치된 태피스트리로는 유일무이하다.
3월 10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과천관 중앙홀과 제1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송번수: 50년의 무언극’ 전시는, 송 작가의 50여 년 활동을 새롭게 조명하고 재발견하는 자리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첫 전시로 기획됐다.
송 작가는 하나의 기법이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과 모색을 통해 고유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덕분에 그의 작품 주제는 종교적 메시지에서부터 전쟁과 재난 등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까지 폭넓다. 또 태피스트리, 판화, 종이, 부조, 환경조형물 등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가시’와 ‘그림자’는 이러한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1960년대 초기 판화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송 작가 전 생애의 작품 100여 점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중앙홀에서는 ‘판토마임’, ‘경고’, ‘균형’ 등 세 가지 메시지를 주제로 1960~1990년대에 이르는 판화작품들을 전시한다. 판화작가로 등단했던 송 작가는 사진 감광 제판 방식의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판토마임’과 ‘공습경보’ 시리즈 등을 제작한 바 있다. 제1전시장은 태피스트리와 종이부조 작품들로 구성했다. 이 공간에서는 전쟁과 재난을 고발하는 ‘경고!’와 자신의 삶을 독백처럼 들려주는 ‘나의 길’, 아울러 종교적 영성에 귀 기울이는 ‘그의 목소리’ 등 세 가지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다.
이 중 ‘그의 목소리’ 섹션은 절대자의 목소리와 작가의 목소리가 합쳐져 드러난다. ‘가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구도의 여정으로, 혹은 고난의 상징으로 읽힌다. 송 작가는 1993년부터 ‘우주-빛이 있으라’ 연작과 같은 종교적 주제의 태피스트리 작품을 제작해왔다. ‘미완의 면류관’은 2002년 능평본당의 의뢰로 제작했다. 가시관은 완벽한 원이 아니라 끊어진 형태를 보인다. 그는 “이어지지 않은 부분을 채우는 것은 작품을 대하는 관람자 각자의 몫”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