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는 푹푹 찌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중입니다. 여름 내내 산불로 온 나라가 어수선했는데, 여름 막바지 들어 안데스 산에 내린 갑작스런 비로 인해 홍수가 났고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이 사라져 어려움을 겪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칠레는 지진과 쓰나미, 산불과 홍수라는, 세상에 있는 모든 자연 재해를 매년 돌림병마냥 겪고 있네요. 그런데 언제나 그런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만 더욱 더 고통 받는 현실이 참 슬픕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으실 때면, 제가 칠레에 도착한 지 딱 3년이 되겠네요. 2014년 3월 중순 경, 실습을 위해 두 달 일정으로 칠레에 왔었습니다. 처음 여권심사대에 섰을 땐, 스페인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중고등학교시절부터 쭈~욱 갈고 닦아 두었던 “아임 파인. 땡큐. 앤 유?” 정도의 ‘훌륭한’ 영어 실력을 자랑하며 입국을 했었답니다. 어쩜 이 문장은 마치 태중에서 배운 것 마냥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어설프게 첫 발을 내딛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시간이 휙 지나가 버린 기분입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과연 칠레에서 살 수 있을까? 언어를 잘 할 수 있을까? 말 못하고 끙끙거리지 않을까? 총 맞는 거 아닌가?’ 온갖 걱정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한 과거의 제가 우습게 보입니다.
아무튼 그 시절에서 어느덧 스페인어로 강론을 쓰고 말하고, 노래를 듣고 영화를 보고 있으니 이건 뭐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보다 더 대단한 듯합니다. 또 칠레 음식에 익숙해지고, 한국에서 하듯 밤길을 걷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저를 보면서 스스로도 칠레 사람이 많이 됐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모든 시간을 돌아보면 역시나 매순간 주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그동안 정들었던 본당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들어갑니다. 백윤현 신부님과 저는 산티아고 대교구 주교님의 소개로 새로운 본당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물론 오는 6월까지는 성골롬반선교회의 지원사제로 계약을 유지하지만, 사는 곳과 방식은 새롭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새로운 곳에 간다는 두근거림도 있지만, 모든 이별이 아쉽고 서운하고 미안하듯이, 칠레의 첫 본당을 떠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매일 손잡고 베소(볼을 맞대며 나누는 인사)를 하던 할머니들은 “가면 또 언제 오는 것이냐”며 서운해 하고, 첫영성체를 준비하던 아이들과 부모들은 첫영성체 사진을 함께 찍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제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한국에서나 이곳에서나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또 다시 새로운 출발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의 기도로 지금까지 힘을 얻고 살아왔지만, 이제 더 많은 기도와 응원이 필요한 시기인 듯합니다. 선교는 잘난 사제가 혼자 외국에 나가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작고 부족한 사제가 수많은 신자들의 기도와 응원으로 힘을 얻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선교사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그런 선교사로 잘 살아가도록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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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훈 신부와 백윤현 신부가 새로 사목하게 되는 마리아 미시오네라 성당.
문석훈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