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헬기조종사 신상훈·유세화 소령
“생사 오가는 비행… 하느님께 모든 것 의탁합니다”
육군사관학교 최초 여생도인 아내와 항공학교 헬기 과정서 만나 결혼
서로 다른 부대에 근무하면서도 가족 함께 주일미사 봉헌하려 노력
부부 헬기조종사 신상훈(베드로·오른쪽) 소령과 유세화(스텔라) 소령이 헬기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특별한 화살기도 예식
헬기 비행 임무를 앞두고 동료들의 이목을 끄는 독특한 ‘의식’을 행하는 조종사가 있다. 경기도 이천 항공작전사령부 안전지도과 지도장교로 복무 중인 신상훈(베드로·42·수원교구 하남 풍산본당) 소령이다.
이 ‘의식’은 사실 이목을 끈다기보다 숙연함을 자아낸다고 해야 더 정확할 듯하다. 신 소령은 헬기 비행 일정이 잡히면 구석구석 꼼꼼하고 철저한 안전점검을 마친 뒤 한 손으로 헬기를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쓰다듬으며 한 바퀴를 돈다.
헬기 조종사라면 비행을 앞두고 극도의 긴장 속에서 누구나 안전점검을 한다. 그런데 신 소령은 이에 더해 마치 어버이와 같은 마음으로 자식의 몸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살피듯 헬기를 한 쪽 손으로 어루만진다. 간절한 화살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하느님, 오늘 비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혹시라도 사고가 나서 저에게 불행한 일이 닥친다면 당신께 아내와 아이들을 의탁합니다.”
신 소령이 헬기와 한 몸을 이루고 화살기도를 하는 장면을 보는 동료 군인들은 ‘어, 뭘까?’라고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화살기도의 의미를 아는 이들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마음으로 안전비행을 기원한다. 화살기도 덕분인지 그동안 비행 중 작은 사고도 전혀 없었다.
17년 전 임관한 신 소령은 사실 장교 생활 초기부터 유명 인사였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숱하게 취재 요청을 했지만 “특별히 드러낼 것이 없다”며 정중히 거절하곤 했다. 신 소령이 세인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경기도 하남 제1항공여단 군수참모 유세화(스텔라·39) 소령 덕분이었다.
2016년 3월 아들의 견진성사 후의 기념촬영. 신상훈 소령 제공
■ 신앙은 가정화목의 기틀
유 소령은 육군사관학교에 처음 입교한 여생도로서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1998년 입교, 2002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하며 유 소령이 택한 병과는 항공이었다. 동기 여생도 중 유일하게 항공병과를 선택했을 뿐 아니라, 당시만 해도 한국군 전체에서 여군 헬기조종사는 3~4명밖에 없었다.
게다가 남편인 신 소령도 헬기조종사여서 이들 부부를 취재하려는 매체들이 극성스럽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신 소령 부부는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임무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자세로 외부 노출을 모두 사양했다.
신 소령과 유 소령은 만나게 된 과정부터가 특별했다. 신 소령은 처음부터 헬기조종사가 아니었다. 정보병과 장교로 임관한 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육군항공병과로 적을 옮겼다. 두 사람은 2003년 논산 육군항공학교 헬기 기본과정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같은 조에 편성돼 같은 헬기를 타면서 정이 들었다. 2003년 12월 항공학교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에도 하느님의 섭리인지 또 다시 같은 지역 부대에 배정받았다.
결혼 당시 아내 유 소령은 비신자여서 관면혼을 받았고 결혼 후에도 곧바로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남편 신 소령을 따라 주일에는 성당에 가곤 했다.
아들(요한·초4)과 딸(플로라·초2)은 유아세례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았다. 유 소령도 마침내 2011년 특수전사령부 성레오성당에서 세례를 받아 완전한 성가정을 이루게 됐다. 지금은 부부가 서로 다른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어, 자녀들까지 모두 모여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수원교구 하남 풍산본당에 교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3월 27일에는 유 소령의 세례성사를 주례했던 김창중 신부(현 군종교구 삼위일체본당 주임)에게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성당에서 아들이 견진성사를 받고 첫 영성체를 했다.
신 소령은 “아들이 첫 영성체를 하는 모습에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면서 “올해부터는 두 아이 모두 풍산본당 주일학교에 등록시켜 교리공부를 받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 소령의 외고조할머니는 한국교회 박해시대가 막 끝난 무렵 입교했다. 외고조할머니 때부터 6대째 이어져온 깊은 신앙은 신 소령 삶과도 하나가 됐다.
그는 “중학교 시절 가정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맘 둘 곳이 없을 때, 서울 대치2동본당 성가대 단원으로 활동하며 신부님과 교리교사들의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았다”면서 “대학생 시절엔 행복하게 교리교사 활동을 했던 터라, 자녀들도 나중에 꼭 교리교사를 하도록 권유하겠다”고 밝혔다.
신 소령은 특히 “항공병과 장교로서 강한 긍지와 자부심, 명예를 지니고 있지만, 항공기 운행은 작은 결함으로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람의 생사는 오직 하느님 손에 달려있다는 사생관(死生觀)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유 소령도 “부부 군인들은 서로 떨어져 두 집 살림을 하거나 자녀 학업문제 등으로 세 집 살림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희 집은 가족 모두가 주일미사를 한 자리에서 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신앙생활의 기쁨을 전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