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기되는 문제
애당초 그 표현 자체가 불운했던「중세」란 말은 한 인문주의자에 의해 언어학에 도입되었고 17세기한 역사학자에 의해 역사학의 시대구분(고대, 중세, 근세)에 적용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인문주의자들은 고전고대(古典古代)와 그것을 재생시킨(르네상스) 자기들의 시대 사이의 시기를 모든 문화가 결여된 단순한 과도기로, 중간의 황폐기로, 심지어는 「암흑시대」라고 부르며 그 시기를 비난하고 경멸했다.
16세기의 종교개혁가들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즉 그들은 고대의 초기교회와 그것을 본보기로 개혁한 그들의 개신교회만이 옳고, 따라서 그 중간 시기의 교회는 쇠퇴하고 변질되고 반그리스도교적이 된 교회라고 비난하고 멸시했다.
그러나 그간 많은 자료의 수집과 발간으로 중세에 대한 본격적이고 깊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무지나 편견이 아니고서는 중세를 단순히 암흑시대로 비난할 수는 없게 되었다. 19세기의 낭만주의는 예술과 문학에서 중세의 위대한 업적들을 찾아냈다. 중세는 나름대로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문화를 발달시켰고, 근대 문명에 그 영원한 가치를 남겨 놓았다. 만일 중세가 없었다면 문예부흥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나아가서 근대인은 문화적 빈곤상태를 면치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교회의 주도하에 그리스도교적으로 통일된 서구 국제사회, 이것이 중세의 본질이요 특성이다. 그것은 보편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뭉친 문화 공동체였다. 종교가 생활의 모든 면에 침투됨으로써 중세고유의 문화적인 통일이 이룩될 수 있었다. 그것은 신(神)중심의 문화였다. 그것은 봉건적인 계급 질서까지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이 국제사회의 지도자는 교황과 황제, 즉 성권(聖權)과 속권(俗權)이었다. 물론 두세력은 가끔 세력 다툼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공존하는 동안은 중세의 통일이 유지되었다. 그러므로 이 통일이 새시대의 주관주의와 분립주의에 의해 해체되고 붕괴되면서 중세는 끝난다. 그 붕괴는 문예부흥에서 시작되고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고 계몽주의에서 극도에 달하게 된다.
■ 시기구분
이미 서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중세의 시작과 끝, 다시 말해서 고대와 중세의 분계선, 중세와 근대의 분계선을 어느 연대로 잡느냐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선 필자는 고대와 중세의 분계점을 민족대이동과 476년의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잡았다. 물론 이 두 사건이 새시대를 형성하는데 별로 기여한 것이 없다고 하며 분계선을 그후 700년대로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서구를 지배하게될 프랑크족의 개종, 그레고리오 교황이 새 민족에게 시선을 돌린것 등은 전환기적 사건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476년에서 700년대까지를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 내지는 전환기로 보고싶다.
다음 중세와 근대의 분계선은 일반적으로는 1500년대로 보지만 교회사에서는 구체적으로 루터가 봉기한 1517년으로 본다. 여기에는 별로 이의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 700년에서 1517년까지는 너무 길기 때문에 다시 세 시기, 즉 초기, 중기(전성기)말기(쇠퇴기)로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초기의 끝은 1050년으로, 전성기의 끝은 1300년으로 본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046년과 1294년이 그 전환점이 된다. 1046년은 독일황제가 교황직을 극도의 위기에서 구해낸 해이다. 그것은 황제 권력의 절정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것이 기울기 시작하는 전환점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중세초기의 종점으로 적합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동서교회가 결정적으로 분열하는 1054년 또한 무시될 수 없는 사건으로 생각되어 필자는 중세 초기의 종점을 1054년으로 잡았다. 1294년은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교황위에 오른 해로, 이때부터 교황권이 쇠퇴하기 시작하기때문이다. 이제 이상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1000여년에 이르는 중세기를 4시기로 간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1, 중세 1기(전환기, 476-700)
교회는 새민족, 즉 게르만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교화하는 일에 전념하게 된다. 이 일은 비잔틴과의 불편한 관계, 새로 등장한 이슬람 아랍인의 세력, 무엇보다도 아리우스파 게르만족들의 박해로 저지를 당하게 된다. 한편 프랑크족과 앵글로 색슨족은 가톨릭신앙을 직접 받아들인다. 프랑크족의 개종은 아직 피상적이었지만 그것이 장차 그리스도교적 서구를 형성할 전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다.
2, 중세 2기(초기, 700-1054)
교황과 프랑크 왕국 간에 제휴가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교황령이 탄생하고 로마 제국이 재건되고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되기에 이른다. 황제들은 교황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고, 교회와 교황을 보호하게 되지만 1046년을 절정으로 황제의 세력이 기울기 시작한다. 북구라파 민족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3, 중세 중기(전성기, 1054-1294)
이 시기는 다시 교회의 자유 투쟁기인 11, 12 세기와 교황의 전성기인 13세기로 구분된다. 자유를 되찾으려는 교회의 투쟁은 클뤼니 수도회의 개혁과 그레고리오 개혁에서 시작되어 임직권 논쟁을 거쳐 마침내 교황권이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교 세계가 하나로 뭉쳐 성지를 탈환하고자 십자군을 파견하고 청빈운동과 더불어 탁발수도회가 생기고, 수도생활이 번창하고, 대학이 생기고, 스콜라학과 더불어 신학이 전성기를 맞게 되고 로마네스크와 고딕 건축 예술이 전성을 이룬다.
4, 중세 4기(쇠퇴기, 1294-1517)
보니파시오 8세 교황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신흥국가의 탄생과 그 왕권의 강화로 교황권이 쇠퇴하기 시작, 중세적 통일이 깨지고 그리스도교적 국제사회가 붕괴된다. 이러한 분열은 교회내로 이어져 공의회 지상주의, 교황의 아비뇽체류, 서구 대이교, 요한 후스와 위클리프이단 등으로 마침내 교회만이 아니고 신앙까지 분열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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