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외국 여행을 갔다온 이들로부터 『그래도 한국이 순간 순간 짜릿한 스릴이 있고 사람 사는 곳 같다』는 말을 듣곤 한다.
사실 지하철 계단을 태연히 걸어 내려가거나 신호등만 믿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는 밀리고 깔려압사(壓死)하기 십상이고, 중후한 중형택시라고 함부로 합승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우리의 현실은 아침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기까지 긴장과 스릴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통계청의 집계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해 동안 「자동차」에 의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1만3천54명, 「철도」3백77명 「기타」3백93명으로 평균 하루에 38명이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대학과 성적, 소값 등「떨어졌다」에 충격받아 비관자살하고 무엇을 쟁취하기 위한 의도적 자살을 한 이가 3천1백59명으로 하루 평균 9명이 자살하는 놀랄만한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외에도 고질적인 결핵과 동사(凍死)로 죽어가는 연간 1천여명의 행려자와 흡인기에 빨려나오는 1백50여만명의 태아, 찔리고 맞고 방화에 의해 죽은 범죄 사망자까지 합하면 한국은 실로「살인천국」이라는 혹평이 무색하지 않은 지경이다.
어처구니 없고 잔인한 살인사건 보도를 한해에 최소한 십여건 이상 접하는 시민들도 이젠 경각심보다는 일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신문의 사회면을 뒤적이고, 실감을 더하기 위해 TㆍV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며칠도 되지 않아 잊어 버리는「기억상실증」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하고,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돌아가는 반생명적 분위기를 탈출하고 싶은 욕구는 분출하고 있지만 명쾌한 대안이나 출구가 없다는 비관적 의식이 사회저변에 깔려 있다.
서울 상도동에 사는 주부 박숙희(30)씨는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거의 날마다 사람이 죽고 범죄들이 갈수록 악랄해져 집밖을 나가기도 겁이 나지만 사회 전체 분위기는 이를 막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분당(分黨)이다, 대권확보다 하며 당리당락에 치우쳐 있어 참으로 암담하고 비관적이다』라고 지적했다.
교회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작년 한해동안 전교구적 차원에서 생명보호를 강조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생명보호=낙태방지」라는 고답적이고 편협한 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나 하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즉 인간의 상식을 강타한 잔인한 유괴살해와 인신매매, 연쇄자살 등 사회의 반생명적 풍조에 대해 공동책임의식을 갖고 예방책과 제어기능을 모색했다기 보다는 강건너 불보듯이 방관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이다.
실로 낙태는 부모의 이기주의적이고 쾌락적인 선택에서 이루어지고, 이 선택은 정부의 경제제일주의와 극단적 산아제한 정책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모든 반생명적 정책과 지침이 생명보다 부차적인 가치를 우위에 두는 잘못된 생명관에 기인함을 감안할 때 생명보호는 단순한 낙태시술의 금지차원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의 시정을 촉구할 수 있는 제어기능수행 ▲반생명적 풍토의 원인과 해결책, 올바른 생명관의 정립을 위한 전문연구기관설립 ▲본당 깊숙이 파고드는 실천운동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면에서 볼 때 작년 12월 8일 인권주일을 맞아 한국주교단이 발표한 사목교서는 ▲낙태ㆍ자살ㆍ안락사등 반생명적 행위를 철저히 단죄하고 ▲경제제일주의와 산아제한 정책과 낙태법 완화 움직임에 대한 구체적이고 강력한 경고하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을 뿐 아니라 금년 생명보호운동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예축된다.
또한 작년 10월 기톨릭중앙의료원이 낙태 시술과 성감별, 안락사 행위들을 금지하는「의학윤리지침」을 제정해 실천에 옮길 것을 결의함으로써 의학계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12월에 발족된 생명문화연구소도 반생명적풍조를 척결하는 학문적실천적 기구로 밭돋움해 생명보호의 나침반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얼마전 불 속에 갇힌 시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불속에 뛰어들어 숨진 며느리에 대한 보도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 GNP의 성장과 산아제한, 의례적인 반대구호와 비례하지 않음을 잘 시사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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