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밝은 금년 한해의 숱한 새하얀 날들에 어떤 빛깔을 칠해야 할까하는 기대가 자못 큰 새해 벽두이다.
정말 어떤 빛깔을 칠해야 될까.
정말 어떤 한해를 보내야 할까.
욕심 부리지 않는 한해, 누구를 헐뜯지 않는 한해, 남을 용서하는 한해, 이웃을 돕는 한해,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가는 한해…기대도 부지기수다.
혼탁하지 않은 세상, 질서가 잡힌 세상, 거짓과 모함이 없는 세상, 신나는 일만이 연일 있는 세상, 장난질이 없는 세상…바람도 헤일 수 없다.
이런 바람과 기대가 뜻대로 성취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게 원하는대로 되지 않아 문제다. 결국 또 한번의 후회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또하나의 새해에 희망을 걸게 된다.
이렇듯 늘 반복되는 뉘우침의 불씨는 여러 원인 탓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욕심이 그 장본인이다.
지난해 가을 1박2일 피정을 한 적 있다. 첫날밤을 명상과 강의로 뜻깊게 보냈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고해성사로 몸과 마음이 개운해 나를듯한 기분이었다.
한데 미사가 시작되면서 피정은 망치고 말았다. 봉헌 때 그만 만원을 바쳤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다급히 얼떨김에 낸 것이다.
피정전 봉헌금으로 준비한 천원짜리가 어느 주머니에 꼭꼭 숨었는지 바구니가 옆 사람에게 올때까지 영 잡히지 않아 황급히 지갑을 꺼내 한 장을 뽑아 넣었던 것이다.
<아까워라>
미사가 끝날때까지 머리속에선 온통이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미사 틈틈이 호주머니를 뒤적이다 끝내 뒷주머니에서 나온 꼬깃꼬깃 꾸겨진 원수같은 그 지폐를 원망했다. 왜 이제야 나왔느냐. 누구 망하는 꼴 보려고 작정을 했느냐 몹시 배아파했다.
겨우 두세 사람의 점심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 액수,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그 돈에 왜 그렇게 혼들갑을 떨며 연연했는지 씁쓰레한 일이다.
욕심을 버려라.
값비싼 외제 옷이나 그릇,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가졌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까. 호화 아파트나 별장이 있다고 해서 정말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로 마음이 채워진다고 하면 잘못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얼마안가서 흥미를 잃게 되고 또다른 것을 얻기 위해 교활해지고 추해져야 하기때문이다.
재물을 모으려고 서두르는 자는 죄를 면치 못한다. 허황된 물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자초했는가.
어떤 이는 친구를 잃고, 어떤 사람은 가족을 버리고, 어떤 작자는 사기꾼이 되고 심지어 살인자가 되기까지 한다.
도박판서 잃은 돈을 되찾을 욕심으로 아이를 유괴해 살해하는 끔찍한 일, 고위층 측근으로 행세 수억대를 등치고, 아파트 분양을 미끼로 갈취 쇠고랑 차는 등 크고 작은, 알고 모르는 숱한 일들이 도처에서 횡행하고 있다.
이것이 다 욕심에서 비롯한 것이다. 욕심은 욕심을 낳고 그 욕심은 또 욕심을 낳기 때문이다.
물욕에 빠져 있지 말고 가난한 사람이 되자. 가난한 마음이 되자.
사람은 가난해서 당하는 괴로움보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챙기려는 욕심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이 항상 더 크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잠시 헛된 욕망을 떠나 유유자적한다면 없는 괴로움이 그다지 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가난한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현재의 곤란한 처지를 파헤쳐나갈 강한 힘이 생긴다.
한편 이런 강한 힘으로 그야말로 가난한 이웃사랑하기에 욕심을 부린다면 그래도 후회없는 한해가 되지 않을까.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