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로 오는 길에 중년 부인 두사람의 얘기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두사람도 전부터 아는 사이는 아니고 기차에서 만난 사이인데 차림이 비슷하고 여행목적이 같았습니다. 둘다 고3자녀를 두었는데 입시를 앞두고 팔공산 갓바위에 빌러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비슷한 차림의 부인들이 몇몇 더 있었습니다. 간편한 몸배 차림에 배낭과 모자를 챙겨 쓰고 있었습니다.
얘기의 발단은 그중 한 부인이 초행길이라 대구에서부터 가는 차편을 묻는 것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사는곳이 어디며 자녀는 몇명이나 되고 어느 학교에 다니며 고3 아이는 몇째인데 어느 대학을 지망한다는 둥.
그들 얘기중에 내게 관심이 있는 부분은, 그곳을 갔다 온다해도 문제는 실력이지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과, 주변에 갔다 온 사람들이 많은데 그냥 있으려니 마음이 편칠 않고 혹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원망이나 후회가 두렵다는 것과, 남보기에도 창피하고 특히 남편한테는 비밀로 하고 나섰다는 것과,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부끄러운 것도 감당할수 있다는데 두사람이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다른 사람들도 그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목욕부터 하고 오는 길이라 했습니다. 또 거기 가면 모두 같은 목적과 처지의 사람들이라 창피하지도 않으며 서로 대화가 잘되고 즉시 친해진다는 말도 했습니다. 나는 집에 와서 이들의 대화를 우리신자들의 신앙생활 태도와 비교해 봤습니다. 입시철에 미사를 봉헌하는 신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일까…?
부모들은 하나같이 자녀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비록 죄되는 일이라도 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합니다. 또 실제로 고해성사를 주다보면 「답답해서 물어보러 갔다」는 분들도 자주 만납니다. 어떤 신자들은 기찻간의 부인들과 같은 말들을 할 것 같습니다. 「실력이 문제지 미사가 문젠가」그러면서도 『다른 신자들이 다 미사를 넣는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미사를 봉헌한다고 해서 떨어질 것이 붙을 리는 없지만, 만일 낙방이라도 하게되면 내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 처럼 될까봐 두렵고 또 시험이 끝날 때까지 내내 마음이 찜찜할까봐 일단 미사를 봉헌하고 보자』고 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다분히 자기 위안을 위한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본 목적은 자기 위안이 아님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주일 미사를 빼먹으면 마음이 영 찜찜해서 주일이면 새벽같이 미사부터 하고 본다는 신자들도 왕왕 만납니다. 죄는 별로 없지만 판공때 고해성사를 안보면 어쩐지 마음이 개운칠 않아서 고해실에 들어왔는데 알아서 죄를 사해달라는 신자도 가끔 만납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를 성전에서 봉헌한 축일에, 자녀를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는 어머니의 올바른 마음 가짐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튼 가끔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사실은 자신의 무엇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짙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미사를 봉헌한 부모님 중에도 자녀가 입시에 실패하면 본인보다 더 속상해서 몸져 눕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봉헌하는 미사는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를 하느님께 바쳐드리고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위탁입니다. 『내가 평소에도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으며 특별히 지난 1년은 자식을 위해서 기도도 많이했고 또 미사도 봉헌했으니 주님은 마땅한 보상을 하셔야 정의로운 하느님이십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하느님과 흥정하자는 태도이며 곧 예수님께 호되게 질책 당한 바리사이파적 사고방식입니다. 그들이 『나는 한주에 재를 두번씩이나 지키고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를 어떡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저에게 이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셔야하지 않겠습니까?』함으로서 하느님을 섭섭하게 했던 것입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생각이 납니다. 그땐 참 가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바쁜일이 생겨서 내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나는 심부름 값을 받아 내일 극장구경갈 절호의 찬스를 잡았습니다. 어머니는 심부름 값을 주기로 약속하셨고 나는 신나게 심부름을 다녀왔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아침에 학교 갈때까지 심부름값을 졸랐습니다. 어머니는 진짜로 돈이 없었습니다. 그건 알지만 어머니가 돼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아들한테 한것은 어른자격도 없는 비겁한 처사라고 떼를 썼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달래시기도 하고 사정도 하시더니 안되시겠는지 앞 집에 가서 빌려다 주셨습니다. 돈을 주시는 어머니는 너무 서운해하셨고 안색은 분노마저 느낄 수 있었지만, 나는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으로 돈을 받아 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그 돈으로 극장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그 서운해 하시던 어머니의 커다란 눈이 어른거렸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왜 그렇게도 서운해 하셨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지난 후에 어머니는 그러셨습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도 이제 중학생으로서 엄마의 아픈 마음을 그렇게도 몰라주느냐? 나도 넉넉해서 너 달라는 대로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지만 자식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영화구경이 그렇게도 중하더냐? 사랑은 제쳐놓고 정의로만 따져도, 나를 희생하면서 너에게 해 준 것을 생각하면 너는 공짜로 그런 심부름 매일해도 모자랄것이고, 내가 베푼 사랑을 생각하면 나는 배신감 마저 느낀다. 사실 심부름이란 자녀의 의무이기도 하거든!』하셨습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도 신자로서의 의무를 해놓고 내 공로를 따져 보상 받으려 한다면 그분 역시 사랑의 배신감을 느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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