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군을 처음 만난 것은 그의 자살미수사건이 있은지 9월째 되던 날 구치소에서였다. 그는 수염이 길고 얼굴이 초췌한, 키가 큰 청년이었다. 초면인데도 악몽에서 깨어난듯, 그러면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줄줄이 엮어갔다.
『저는 3남매중 둘째 아들입니다. 아버님은 정육점 도매상을 하셨고, 어머니는 사랑과 정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어린시절, 저는 꽃을 무척 좋아해서 꽃과 수양버들, 그리고 파란 잔디로 가득찬 마을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마음껏 뛰놀며 자라온 개구장이였습니다.
유년시절 저는 아주 부족함이 없이 공부도 잘했고 말썽없는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저는 꿈과 희망을 가슴가득 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유난히 형님을 사랑하셨고 장차 큰 인물로 만드시려고 무척 애를 쓰셨지만 형은 운동만 좋아했기 때문에 아버님의 걱정은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의 희망이 결국은 형에게서 제에게로 바뀐 셈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님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저 공부에만 충실하면서 부모님께 순종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느덧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중3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의 좌표가 빗나감은 이때부터 였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학교측에서는 아주 중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그것은 일류 고등학교 진학반을 모의고사로 재편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닦아온 저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코피를 쏟고 밤을 새우면서 공부했던 저에게는 당연히 인천에서 가장 일류로 꼽히는 고등학교에 편입돼야 했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슈바이처」를 읽고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저의 장래의 희망과 꿈은 꼭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누가 돌보아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한눈 팔지않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때 학교에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부모님들의 면담이 있었습니다. 저는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당시 아버님의 사업이 너무 크게 번창하면서 어머니마저 그 일에 동참하셨기 때문에 아침시간과 저녁 귀가시간이 저와 맞지않아 부모님 만나기가 무척 힘든 때였습니다. 저는 오랫만에 부모님을 뵙고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들은 너무 사업에만 몰두하셨기 때문에 저의 다급한 이 말은 허공에 부딪치는 바람처럼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발을 동동 굴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고등학교 진학에 누락되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저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아픔을 혼자 느껴야했습니다.
저는 그 때문에 반항심에서 거침없이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빠르게 말입니다. 그때부터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고 부모님이 죽도록 미웠고 싫었습니다. 저는 방황하기 시작했고 체력시험도 포기했습니다. 그냥 세상만사가 모두 싫어졌습니다. 이때부터 책상과 책에서 완전히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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