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한 제자에게서 성탄과 신년 인사를 겸한 카드 한장을 받았다.
『선생님 새해에는 작품 많이 쓰시고 건강하시고 또 선생님 늙지 말아주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참으로 사랑스럽고 애틋한 기원이었다. 나도 곧 카드를 보냈다.
『중략…새해가 된다는 것은 모두 똑같이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것도 되겠죠. 그러나 주님 안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것만이 아닌, 지난 해보다 더 많이 성숙해가야 한가는 책임이 따른다고 할까요. 늙는다는 것은 자연이지만, 성숙한 인간으로 되어간다는 것에는 의지가 필요하지요. 그 의지란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것입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내가 쓴 「성숙」이란 단어를 잠깐 생각해 보았다.
성숙이란 흔히 세월에 따라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정한 성숙기를 말하기 쉽다. 내가 말하고자 한 뜻은 내 자신에게, 또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확실히 많은 세월을 살았고 또 경험도 쌓았다는 것이니, 그에 따른 성숙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만 말할 수 없는 때가 있다. 간혹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성숙치 못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제법 정치적 경력을 쌓았을텐데도 성숙하지 못한 정치인, 성숙하지 못한 사회인,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적이 있었다. 아마도 20대 후반부터 였던것 같다. 무의식중에 늙는다는것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않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이란 것에 대한 불가항력의 체념이 아니라, 생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 때문이라고나 할까. 다시 말해 가치관이 바뀌어진 것이다. 그 변화는 영세를 받고 예수를 믿고 따르겠다고 마음 먹은때 부터 였다. 『나를 따르시오.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제부터 당신은 사람들을 낚을 것입니다』
그 말씀에 밑줄을 짙게 긋고 그분의 제자됨을 다짐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세계는 확실히 내게로부터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 주었다. 특히 나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무거운 짐도 가볍게 여겨졌고, 점점 좁아지는 나의 한계를 넓힐수 있었다.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대개가 무지에서 오는 것이었다. 또 나의 이기적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자신이 얼마나 하잘것 없는 인간인가를 느꼈다. 그래서 그때마다 『알았다 이제 알았다!』하고 기뻐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여러모로 내게 해방감을 주신 분이셨다. 그런 나는 그리스도를 떠날수가 없었고, 그분의 안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분을 잊을때도 많았다. 그럴땐 틀림없이 내 얼굴에 주름도 보이고 어둠도 스치고 했다. 그래서 연말에는 내 신앙의 깊이를 점검해보며 참회도 하고, 신년의 새출발을 다짐하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되풀이되던 습성이었던것 같다.
지난 2년 전부터 나는 성서 집중 공부를 시작했다. 이 공부는 내게 엄청난 각성을 하게 해주었다. 부끄럽게도 아직까지의 내 신앙이란 것이 얼마나 욕심뿐이었나 하는 자책도 하였다. 예전에는 하나 알게 되면 『알았다, 알았다』고 소리치고 싶었는데,이제는『몰랐구나, 몰랐구나』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 등은 즉각 그물을 두고 그분 뒤를 따랐다. 그리고 예수께선 뒤이어 분명하게 하나의 임무를 주셨다. 따르라는 것은 명령이었고, 사람을 낚으라는 것은 주어진 임무였다. 그래서 제자들은 하던 일을 두고 그분을 따른 것이었다. 그것은 곧 그분의 과업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영세를 했을 때 나의 무엇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는가, 다만『주님 제게 힘을 주십시요. 제게 지혜를 주십시요. 제게 창조적 계시를 주십시요』했을 뿐이었다. 이것은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내 중심의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
예수의 제자됨은 그분이 하시는 일에 동참함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모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셨다. 그 결과가 우리를 위한 것이 된 것이었다. 예수께서도 우리들에게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하셨고 『그러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이다.
왜 그 대목을 스치고 지나갔을까. 눈먼 인간의 어리석음이었다.
새해에는 진정으로 주님을 위한 임무에 충실코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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