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5학년때, 우리 담임 선생님의 아들이 같은 국민 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후에 우리 반학생들의 움직임이 전연 달라졌습니다. 반장ㆍ부반장은 매일 아침 학교에 올 때 선생님집에 들려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오고, 부잣집 아이들은 맛있는 것 좋은 것이 있으면 그 아이의 손에 들려주고 모두가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 아이는 아버지를 잘 만나서 참 행복해보였습니다. 나도 우리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험을 쳐서 반장이나 부반장을 뽑지 않는 이상 내가 임원이 되기도 틀렸고, 그렇다면 우리집이 부자가 되서 그 아이에게 환심을 살 수 있는 형편이 되든가, 이것도 저것도 못 되니 언제나 선생님의 시야에서는 사각에 놓여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해하고 오히려 그 아이에 대하여 무관심하려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장ㆍ부반장이 부잣집 아이들과 어울려 자기들끼리 놀고 선생님의 아들에 대해서 신나게 얘기 할때는 어린 가슴에 독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도 나중에 반드시 어떤 큰자리에 앉든지 아니면 큰부자가 되리라!』 그때부터 아마도 권력과 부에 대하여,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란 경험을 하게된것 같습니다.
재산에 대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래도 승복할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가난한 이가 부자보다 행복합니까?
나는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지만, 할 수만 있으면 부자이기를 선택하겠습니다. 나는 굶주리기 보다 배부르기를 선택하겠습니다. 울면서 살기 보다는 웃으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남의 미움을 사고 욕을 먹기보다 사랑 받고 칭찬을 들으며, 누명을 쓰기 보다 이해 받기를 원합니다.
이럴 때 나는 행복을 느낍니다. 나중에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클 것이란 예수님 말씀 때문에 지금 불행을 선택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땅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또 나중에는 더 행복하고 싶습니다.
지금 배부른 자는 불행이라 하셨기에 먹을 것을 두고도 굶주려야 합니까? 지금 웃는자는 불행하다고 하셨기에 즐거운 일이, 예를 들어 아들이 원하던 대학에 합격을 했는데 슬퍼하고 울어야 합니까? 말도 안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라면 확실히 행복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우선 가난해야하고 그중에서도 굶주리며 매일 울고 슬퍼해야 하며 아무에게도 칭찬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의 아들 때문에 미움받고 욕을 먹어야 하며 누명을 쓰야만 한다면, 그럴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칭찬과 사랑을 받기도하며 부자들이 슬퍼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 참된 행복의 행방은 어떻게 됩니까? 생각할수록 혼란에 빠집니다.
처음부터 성경 말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구원자를 기다리던 시기에 예수님이 나타나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가난하고 굶주리며 세상으로부터 별로 시선을 끌지 못하던 버림받은 소외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장 성공할만한 가능성이 없었으므로 오히려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언젠가는 우리를 구원할 그분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설교를 듣고 바로 이 분이야말로 하느님이 약속하신 구원자 메시아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노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득권에 침해를 받을까봐 예수를 싫어하고 미워하며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 그를 잡아 죽이게 됩니다.
사회로부터 인정받던 사람들과 부자들은 오히려 현실에 만족하고 가진 것에 대한 집착으로 예수께 자신을 개방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그들이 가진 권위와 재물의 위력을 믿었기 때문에 예수께 신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어쩌면 대다수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하느님과 율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권위를 키워 나가는데 이용하여 성공했기 때문에 이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예수의 설교 듣기를 거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을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수많은 소외계층을 두둔하며 오늘 성경말씀을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경우 예수님도 느닷없이 『가난한 여러분은 행복합니다』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하실게 아니라 분명하게 말씀하셨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난한 여러분, 여러분은 마음을 열고 사람의 아들이 설교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고 신뢰함으로 진정 행복합니다!…』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보니 부자가 재산을 많이 가졌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재산이 그리스도께 신뢰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배부르게 먹는 것이나 지금 웃고 지내고 뭇사람으로부터 칭찬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고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하며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지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미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왔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행복을 어느정도 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우리 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권력이나 부가 이기적으로 남용됨으로써 우리자신이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가장 큰 권위에 계시고 가정 부유하신 분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고 있음을 깨닫기만 한다면 아무도 부럽지 않고 아무것도 아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께 신뢰함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임이 드러나기만하면 우리 주변 세상 사람들의 움직임이 확 달라질 것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