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 대신 술과 담대를 배우면서 좋지 않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우리집 금고에서 현금 72만원을 갖고 가출해 버렸습니다.
부산과 제주도로 무작정 돌아다녔지만 나의 텅빈 가슴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넓은 바다를 가도, 높은 산으로 올라가 저의 답답한 심정을 풀려고 했지만 저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집을 나온지 한달만에 돈이 다 떨어져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부친께서는 저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나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뒤늦게나마 학교에 찾아가시어 면담을 했지만 이미 모교가 아닌 3류공고에 진학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여서 입학원서를 어머님이 대신 쓰셨습니다.
어머님은 서둘러 저에게 시험준비를 시키셨고, 다음날 고등학교 진학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체력점수가 없는 나에겐 희망은 없었지만 결국 어머님의 권고에 따라 시험을 친것입니다. 시험발표날 저는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저의 합격 통지서를 보시고 『이것도 학교냐?』하시며 학교를 당장 때려치우라 하셨습니다. 저도 공감이었습니다.
진학 시험에 떨어져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많은 친구들을 볼때 줄 수만 있다면 저의 합격 통지서를 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습니다.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 가든지 막 살고 싶은 충동과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님의 강권에 못이겨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선생님들과의 싸움, 친구들과 싸움, 패싸움 이런 생활로 점점 난폭하고 거칠어져만 갔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은 한편 좋은 추억도 많았습니다. 사고뭉치들만 모이는 써클에서 그래도 그들은 조금이나마 나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지금 그 친구들은 사회에서 각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학교 생활에서 얻은것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초기 패싸움으로 학교를 자퇴하면서부터 제가 유일하게 설 땅을 잃어 버렸습니다.
저는 폭행죄로 세상에 태어나 처음 18세 나이로 인천 소년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어두운 감방, 화장실 악취가 진동하는 가운데서 가다밥을 먹어야 하는(지금은 다름)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해야하는 불모지대! 저는 처음에는 그런 생활에 적응을 잘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자연적으로 그런 생활에 젖어들었고, 감방 동지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꼭 일류학교에만 가야된다는 것은 시정될 일이지만 그러나 윤군의 경우는 의대를 지망하기 위해서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기에 문제는 달랐다. 윤군은 부모님께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 주었어도 꿈을 이룰 가능성도 있었으리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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