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만들며 사순시기 보내고 있는 ‘벼리마을’ 장애인들
“새하얀 크림·달콤한 맛… 장애보다는 케이크 먼저 봐주세요”
취업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이 활동
쿠키와 300여 개 케이크 하루 생산
국내산 재료 쓴 건강한 먹거리지만
‘장애인 제작’ 꼬리표에 편견도 많아
벼리마을 근로자들이 빵 사이에 고구마쌀무스를 채우며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요한 6,51)
매주 성체를 받아 모시는 신자들에게 빵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빵은 사순시기와도 연관이 깊다. 성체성사를 세우신 최후의 만찬이 예수의 수난 전날이었을 뿐 아니라, 서양권에서는 예로부터 신자들이 사순시기에 고기 대신 빵을 먹으며 금육, 즉 소재(小齋)를 지키곤 했다.
빵을 만들며 사순시기를 보내는 장애인들을 만났다. 바로 교구 사회복지회 산하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시설장 송현석 신부, 이하 벼리마을)에서 활동하는 장애인들이다.
벼리마을 입구에서부터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빵 굽는 냄새다. 오븐을 열자 노릇노릇 구워진 빵이 나타났다.
빵이 나오자 흰 모자와 조리복을 착용한 케이크 제작팀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쪽에서 빵을 가로로 자르면, 다른 한쪽에서는 잘린 빵 사이사이에 쌀고구마 무스를 채운다. 이어 다음 사람이 빵 표면을 케이크 모양으로 정돈하고 냉동실에 넣어 식힌다.
케이크가 식으면 장식 작업에 들어간다. 한 사람이 크림을 바르면, 옆 사람이 고구마 가루를 묻힌다. 여기에 다시 크림을 올리면 옆에서는 초콜릿과 젤리를 얹는다. 벼리마을 특제 ‘고구마쌀무스케이크’가 완성됐다.
‘일사불란’이란 말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케이크를 만드는 협동과정에는 한 치의 군더더기도 없다. 이런 노련함으로 하루에 많게는 300여 개의 케이크도 만들 수 있다.
근로자가 케이크에 고구마 가루를 묻히고 있다.
장애인보호작업장은 직업능력이 낮아 일반 사업장에 취업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이 생산 활동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벼리마을의 작업에서는 ‘직업능력이 낮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그만큼 끊임없이 노력과 정성을 들여 작업을 익혀왔기 때문이다.
빠르게 만들었지만 케이크의 모양과 맛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특히 케이크 맛은 벼리마을의 자랑이라 할 만하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한 만큼 맛이 좋다.
케이크 주재료는 국내산 쌀과 국내산 우유다. 케이크에 따라 부가적으로 사용하는 딸기, 고구마 등도 모두 국내산을 사용하고 있다. 보존료, 화학첨가제 등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케이크만이 아니다. 벼리마을에서 생산하는 쿠키 역시 밀가루 없이 쌀과 국내산 버터로 만들고, 떡도 방부제·유화제 등을 넣지 않은 국내산 재료로 뽑는다. 건강한 먹거리를 전하고 싶은 벼리마을 장애인들의 마음을 담은 결과다.
7년째 벼리마을에서 일하고 있다는 김지원(마티아·28)씨는 “일을 할 수 있어 기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 역시 이곳에서 만든 케이크를 먹으면 맛있고 기분이 좋다”면서 “다른 분들도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벼리마을은 장애인들의 일터이자 배움터다. 벼리마을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72명이지만, 이중 57명은 직업기술을 배우는 훈련생들이다. 벼리마을은 장애인들의 사회적응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여기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취업, 자립해나간다.
벼리마을 시설장 송현석 신부는 “아직도 장애인들이 만든다고 하면 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아쉽다”고 말한다. 이어 송 신부는 “사순시기를 맞아 나눔에 관심을 많이 갖는데, 장애인이라고 해서 비장애인보다 못하다는 편견을 깨는 것 또한 큰 나눔”이라면서 “신자들이 물질적인 나눔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나누는 사순시기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문의 031-443-2789 벼리마을, 후원계좌 301-0056-6536-91 농협(예금주: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