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일단의 대구지역 청년들이 창간한 ‘천주교회보’(天主敎會報)로 시작한 가톨릭신문은 현대 한국교회사를 대변하는 산 증인이다. 일제강점기와 분단, 한국전쟁 등 부침의 역사와 군사독재, 민주화운동, IMF 등 역동의 세월을 거치면서 가톨릭신문은 다양한 기사와 사설, 외부 기고 등으로 세상에 진리를 외치는 예언자적 소명을 다해왔다. 창간 90주년을 맞아, 가톨릭신문이 예언자직을 수행하기 위해 겪어왔던 도전과 모험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 작지만 큰 걸음(1927~1933년)
1927년 4월 1일, B5배판 4면짜리 월간지가 발행됐다. 바로 가톨릭신문의 전신인 ‘천주교회보’였다. 천주교회보는 창간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창간의 변을 밝혔다.
“本報(본보)는 左(좌)의 세 가지 要求(요구)에 應(응)하야 出生(출생)하였으니 一(일)은 南方敎區(남방교구)내의 消息報道(소식보도)요 二(이)는 敎會發展(교회발전)에 대한 意見交換(의견교환)이요 三(삼)은 步調一致(보조일치) 이것이외다.”
천주교회보가 밝힌 창간 이유는 바람직한 교회언론상을 보여준다. 교회언론은 교회 소식을 알려주는 기본적인 책무(소식보도) 외에도 교회의 발전방향을 제시(의견교환)하는 예언자적 역할, 그리고 교회공동체가 함께 발맞춰 나갈 수 있도록(보조일치)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가톨릭신문은 창간 당시의 이념을 사시로 삼아 매스미디어를 통한 교회의 일치와 단결, 교회의 발전과 민족복음화를 위해 소식보도, 보조일치, 조국성화의 정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1949년 4월 1일 천주교회보 복간호. 1945년 해방 뒤 휴간된 교회 잡지와 신문들이 복간되는 바람을 타고 다시 태어났다. 복간하면서 사시에 ‘조국성화’를 추가했다.
■ 복간과 사회참여(1950~1960년대)
천주교회보는 창간 후 6년여 동안 남방교구(대구대교구) 소식을 위주로 전했다. 하지만 1933년 3월, 조선 주교단이 모든 출판물을 서울에서 발행하는 ‘잡지 통폐합’을 결정하면서 1933년 4월 1일자를 끝으로 폐간됐다. 천주교회보는 해방 뒤, 휴간된 교회 잡지와 신문들이 줄줄이 복간되는 바람을 타고, 1949년 4월 1일 복간했다. 복간하면서 사시에 ‘조국성화’를 추가했다.
천주교회보가 복간하고 1년 뒤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국사회와 교회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천주교회보 역시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 동안 정간됐다. 1950년 11월 10일자로 복간한 천주교회보는 ▲한국전쟁 진행상황(해외 구호 등 포함) ▲반공정신과 전후 복구, 교회재건을 촉구하는 글 ▲지식인들의 개종 소식 등이 주로 보도했다. 1953년 ‘가톨릭신보’로, 다음해인 1954년에는 ‘가톨릭시보’로 제호를 바꿨다.
1960년대, 한국은 전쟁 이후 폐허가 된 경제를 극복하고 재기하려 발버둥 쳤다. 1961년 발발한 5·16 군사정변 이후, 정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노동과 인권 문제 등이 심각하게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톨릭시보는 교회 내적으로, 교계제도 설정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최 등 굵직한 사건들에 중점을 두기는 했으나 인권과 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보도했다.
1971년 2월 28일자 1면. 김수환 추기경의 ‘거국적 정풍운동 제의’를 머릿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김 추기경은 사순시기를 맞아 전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한국의 부패상을 개탄하고 사회정화에 그리스도인이 앞장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사회 부조리에 일침(1970~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노동과 인권 문제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이에 가톨릭시보는 당시 정치·사회적인 시대상황과 분위기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가톨릭시보는 1971년 사회정화에 그리스도인이 앞장설 것을 촉구한 김수환 추기경의 ‘정풍운동’을 널리 알리며 대사회적 목소리를 냈다.
또한 가톨릭시보는 모자보건법 반대교서, 지학순 주교 구속 등에 관한 보도를 통해 반독재 행보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정부의 탄압과 통제도 거세졌다. 결국 시국 관련 보도는 갈수록 지면에서 사라져갔다.
가톨릭시보는 1980년 4월 6일자(1199호)부터 제호를 가톨릭신문으로 변경했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시작한 1980년대는 암울했다. 하지만 1980년대는 한국교회가 새롭게 도약하는 시기였다.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과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사업들은 한국교회 위상을 세계교회에 알리는 기회였다.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최초 한국 방문, 103위 순교 성인 시성, 1989년 10월 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세계성체대회와 교황의 2번째 방문 등은 민주화운동을 통해 각인된 한국교회를 다시금 세계에 알리기에 충분했다.
1984년 5월 6일자 1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최초 한국 방문을 맞아 가톨릭신문은 호외판을 내는 등 방한 일정을 충실하게 보도했다. 그외 1989년과 2014년 교황 방한 때에도 단순보도 보다는 교회적 의미 전달에 힘을 쏟았다.
■ 급변하는 사회, 교회 목소리(1990년대)
1990년대 들어 사회가 다변화되고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자 가톨릭신문은 그 사명과 역할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요청받았다. 민주화운동으로 대변되던 인권 운동 개념은 생명, 여성 분야로 그 폭을 넓혀갔다.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해, 가톨릭신문은 생명운동, 해외원조, 민족화해, IMF 외환위기, 새로운 복음화 모색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1990년대 초반 한국교회 주요 이슈는 인간생명, 특히 태아생명의 존엄과 관련한 것이었다. ‘모자보건법 반대’ ‘태아 발 배지 달기’ 운동 등 생명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1994년 상반기까지 범교회 차원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다.
아울러 1990년대 후반은 새로운 천년기를 앞두고 한국교회가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신자 증가율은 감소했고 냉담교우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유아와 청소년 세례자도 감소하고 있었고 경제 위기를 틈타 사이비 종교가 난립했다.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은 확연히 정해져 있었지만 그것을 드러내고 실천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가톨릭신문 역시 ‘2천년 대희년 다 함께 준비합시다’ ‘대희년을 배웁시다’ ‘새 날 새 삶 - 2천년 대희년 맞이 실천방안’ ‘우리 공동체 대희년 준비 어디까지 왔나’ 등 대희년의 정신을 익히고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기획들을 마련하고 희년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한국교회의 소식들을 충실하게 보도했다.
1997년 4월 6일자 25면 ‘아시아교회가 간다’ 시작을 알리는 기사. 창간 70주년을 맞아 아시아 복음화에 대한 노력으로 기획을 시작했다. 첫 기획은 1999년 9월까지 계속됐고, 2006년과 2007년에 두 번째와 세 번째 기획이 이어졌다.
■ 아시아 복음화와 뉴미디어(2000년대~현재)
21세기, 한국교회는 또 한 번의 시대적 사명을 요청받았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복음화를 향한 고민과 제안이 필요했다. 그 응답이 ‘아시아 복음화’였다. 한국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아시아 복음화라는 큰 목표를 이루고 나아가기 위해 가톨릭신문은 전사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시작은 1997년 4월 시작한 ‘아시아교회가 간다’ 특집기획이었다. ‘아시아교회가 간다’ 특집기획은 2000년대 들어서도 계속돼 아시아 복음화를 향한 열정을 한국교회 전체에 전파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기획은 2006년 4월 ‘아시아교회가 간다 2’, 2007년 8월 ‘아시아교회가 간다 3’로 이어졌다.
아시아 복음화를 향한 가톨릭신문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5년 11월 중국 최대 교회언론사인 ‘신더셔’(信德社)와 업무협약을 맺은 것이다. 가톨릭신문은 업무협약을 통해 중국 대륙 복음화는 물론 아시아 전체 복음화를 앞당기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어 2016년 3월에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와도 업무협약을 맺음으로써 아시아 복음화를 향한 발걸음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가톨릭신문 2016년 4월 3일자 1면. 뉴미디어 ‘가톨릭e신문’ 창간을 알리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최적화하여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PC, 모바일에서 편리하게 종이신문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가톨릭신문에게 있어 2000년대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었다. 종이신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독자와 함께 호흡하기 위해 2016년 4월 1일 ‘가톨릭e신문’을 창간했다. 빠르게 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최적화된 가톨릭e신문은 PC와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종이신문을 볼 수 있어 독자친화적인 미디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