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독보적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재독 작곡가 박영희(소피아·71·전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학 교수)씨가 최양업 신부를 주제로 한 오페라를 작곡 중이다. 한국 연극계의 거장 오태석 교수(극단 목화 대표)가 대본을 쓰고 양업교회사연구소가 고증을 맡고 있다.
이메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미 마음 속에서 작업을 시작한 지는 3~4년 전부터”라고 밝힌 그는 “언제쯤 무대 위에서 펼쳐질지, 그 시기는 주님께서 정해주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근황을 묻자 “서한집을 항상 옆에 두고 읽으면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을 읽는다”고 했다.
“작곡 전에는 많이 읽고, 오선지를 펼치면 작곡 일에만 몰두합니다. 최양업 신부님께서 21세기에 어떤 ‘소리’를 즐겨 부르셨을까 생각하며 사향가와 천주가사를 4.4조에 따라 큰소리로 낭송합니다.”
최양업 신부와 초기 한국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사랑이 전해져 왔다.
박씨는 클래식과 한국 음악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세계 현대음악계에 새로운 사고와 방향성을 제시해 온 작곡가로 평가된다. 세계적인 현대음악제 도나우에슁엔 음악제에서 첫 외국인 작곡가이자 여성 작곡가로서 작품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활발히 작품을 발표하며 이와 관련된 출판 학술대회 개최와 함께 ‘박영희 작곡상’ 제정 등 서양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작곡가다. 지난 3월 6일 제11회 대원음악상 특별공헌상 수상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그에게 최양업 신부는 10여 년 전부터 음악적인 화두였다.
“2000년부터 5년 동안 그리스 신화를 공부하고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달그림자’ 오페라를 끝낼 즈음이었습니다. 다음 작곡의 주된 주제를 ‘겸손’으로 삼자고 마음먹었는데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을 접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최 신부님의 발끝에 앉아 있다”는 말에서 서한을 통해 그가 받았을 감동이 느껴져 왔다. 이후 최양업 신부의 라틴어 서한집의 여덟 가지 구절을 텍스트로 삼은 무반주 합창곡 ‘주님 보소서 우리의 비탄을 보소서’(2007), 테너 독주와 관현악단을 위한 곡 ‘빛 속에서 살아가면’(2007) 등을 통해 최 신부의 영성과 신앙을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그는 최양업 신부를 “예수님이 걸으신 겸손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신 분”으로 설명한다.
“영혼을 구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열성을 보이셨던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은 한국교회와 우리 신자들에게 찬란한 발자취를 남겨 놓으시고 이미 156년 전에 빛이 되셨습니다.”
앞으로는 ‘슬프고 기쁜 음악이 가득한 짤막짤막한 연극 겸 음악’같은 곡들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의 슬프고 아주 기쁜 이야기 같은 것들입니다. 양반 집 주인과 대대로 종의 신분으로 살고 있는 늙은 종이 성경을 통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배워가는 그런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한 박씨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악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예술대학교, 독일 카를수루에 국립음악대학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학교 작곡과 주임교수와 부총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