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답지 않은 겨울」이라는 말을 흔히들 한다. 요즈음 날씨가 겨울구실을 하지 못하고 영상에서 맴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날씨가 갑자기 변덕을 부려서 영하5도까지만 내려가도 사람들은 춥다고 몸을 웅크리며 호들갑을 떤다. 그것도 요즈음 사람들의 변덕인가보다.
역시 겨울은 겨울다와야한다. 옛날에는 눈이 한자씩 쌓이고, 강물이 꽁꽁 얼어붙고, 전신주의 전기줄이 바람에 윙윙 울어대는 그런 겨울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날씨는 언제나 맑아서 밝은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한낮이면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아내렸다. 그런데 요즈음의 공해 속에 찌들어있는 겨울은 언제나 음침한 날씨만 계속되고 있다. 밝은 햇빛이 그리운 오늘의 겨울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도 밝지 못하고 우울한 모양이다. 대망의 1992년, 희망에 찬 1992년, 이라는 말들을 하며 보다 새롭고, 보다 변화된 밝은 세상을 기대하며 새해를 맞이한 우리들이지만, 어쩐지 그런 기대는 일찍부터 흐려지는 것같다. 이 사회는 너무도 시끄럽다. 정치꾼들은 총선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고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할바가 아니라는듯이 소란을 떨고, 어느 생산업체에서는 노사분규로 조업을 못해 수출이 중단되는 등, 아우성들이고, 그런 틈을 타서 여기 저기에서는 크고 작은 범죄가 극성을 부리며 우리를 불안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어째서 사회가 이처럼 시끄럽고 불안한 것일까. 참으로 마음 편하게 자기일에 몰두할 수가 없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닌 것같다. 그래서 갈팡질팡하며 자신의위치가 어디인지 모르고 뒤뚱거리는것이다. 불안한 사회, 내일이 없는 사회, 내일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오늘만을 무사하게, 나만이 배부르게, 그리고 오늘만을 즐겁게 살자는 듯이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치와 과소비가 이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사치와 과소비풍조에 빠져있는 이 사회를 건져내기 위하여 신문 방송 등의 매스컴은 물론 범국민적인 운동이 떠들썩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런 과소비 풍조는 아직도 깊숙이 뿌리를 박고 있다. 있는 사람들이나 없는 사람들이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먹고 마시고 쓰고 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변두리의 가난한 동네다. 아니, 가난하다고 하면 우리 동네가 왜 가난하냐고 항의를 하고 나설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모두들 스스로가 중산층이라고 자처하고 있으니 말이다. 동네 골목을 오르내릴 때마다 밀리는 자동차를 때문에 짜증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그 자동차들 가운데는 ××부페, ○○숯불갈비 라는 식당 상호를 써붙인 소형버스들까지 끼어서 더욱 정신을 어지럽게 한다. 마을사람들을 식당으로 실어나르는 차들이다. 그처럼 요즈음 사람들은 외식을 즐기는 모양이다.
어느 신문에서인가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식비로 쓰는 돈이 생활비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외식비가 우리보다 잘사는 일본 사람들의 배가 넘는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런 문제만 생각해 보더라도 우리는 지금 너무도 우리의 형편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값비싸고 화려한 외식보다는 휴일 하루만이라도 주부의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을 맏들어 가족끼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아늑한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복잡한 세상, 현기증이 나도록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제 자리를 찾고, 마음 편하게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오고야 말것이다. 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마음을 위로한다. 사람이 믿음이 없이는 살아갈수가 없을 것이다. 주일이면 나는 성당에 가서 예수님을 생각하며, 기도를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게 나의 길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창가에 놓아둔 영산홍이 뾰족뾰족 꽃봉오리를 맺고 있다. 이제 멀지않아 그 붉은 영산홍은 활짝 피어서 나의 마음에 신비스러움과 삶의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충실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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