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에는 사각형의 조그만 냉장고와 제법 큰 커피포트가 있습니다. 하루는 이 둘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시원한 물을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면, 냉장고는 자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만족하겠지만 포트는 인정 받지 못한 것 같아 섭섭해 할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반대로 손님이 커피맛을 칭찬하면, 포트는 우쭐해 하고 냉장고는 의기 소침 할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둘은 경쟁관계가 되었습니다. 한 방에 나란히 같이 지내지만 둘 사이에 껄끄러운 감정은 쌓이고 사이는 벌어졌습니다. 하루는 결정적이 사건이 생겨 서로를 비방하고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중인격자야!』냉장고가 말했습니다. 『너는 전기의 힘으로 물을 끓인다고 말하는데, 그런 얼토 당토 않은 거짓말이야! 내 경험으로는 전기가 통하면 물을 차게하고 그래서 얼음을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결코 물을 데우고 끓을 수는 없는 거야!』포트가 응수를 했습니다. 『너야 말로 거짓말쟁이고 위선자 아니냐! 전기가 통하면 열이나서 물이 끓게 되어있는 거야! 나는 진작 네가 사기꾼인 줄 알았지만 여태 말은 하지 않았어, 이제 솔직히 인정하고 모두에게 사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둘의 싸움은 해결 될리가 없었습니다. 내가 볼 때 둘다 맞는 말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이해 할수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둘은 서로 말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를 피하고 방 안의 커피잔이나 유리컵에게 서로 비방하기도 하고 누가 옳은지 판단하게도 했지만 전기의 힘을 경험하지 못한 다른 물건들은 대답해 줄 수 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들이 해줄 수 있는 말은 한방에 같이 지내면서 제발 서로 화해하고 더 이상 싸우지말고 친하게 지내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사실 주위의 다른 동료들은 누구나 옳으냐 하는 것보다 서로 사이가 나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들 당사자들도 조용히 생각해봤습니다. 상대편이 잘못은 했지만 화해의 필요성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다는 것이 자손심이 상하고 더구나「잘못한 것이 없는 나」로서는 더욱 먼저 손을 내밀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먼저 화해를 청하면 내가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되고 이것은 정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의를 따른다는 측면에서도 그럴 수는 없으므로 좀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라도 상대편에서 화해를 요청하면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응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것만해도 나로서는 대단한 양보며 결단이라고 자위했습니다.
아직도 마음 속에는 상대방의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주위 동료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화해 하기로 작정하고 서로 말을 하기로 했습니다. 말을 해야만 자신의 진실도 전할 수 있고 오해도 풀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빈말이지만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다시 옛날의 그 얘기로 자연스럽게 되돌아 갔습니다. 서로 「그때는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다가 이번에는 더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보다 더 심한 인격적인 모독과 욕을하며 싸웠습니다.
냉장고가 말했습니다. 『이 버러지같은 자식, 나보다 값도 싸고 쬐끄만게 어디서 함부로 까불어! 내가 붙혀주니까 제 친구로 아는 모양이지? 싸가지 없는 것!』 포트도 질 수는 없습니다. 『야, 버러지보다 못한 자식, 너는 땅바닥에 내려놓지만 난 네 위에 올라 앉아있어! 아랫 것이 분수도 모르고 까불고 있어!』이제 감정만 격해져서 서로 헤어졌습니다.
매일 생활에서 얼굴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많이 해봤지만 별 위로가 되질 못하고 괴롭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기도하는 동안에는 후회도 많이하고 예수님의 말씀 『원수를 사랑하라』도 생각나고 해서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는 데, 그래서 용기를 갖고 막상 얼굴을 대하는 순간, 그런 마음은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깊은 데서부터 치미는 미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냥 참아 넘어가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용서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이제는 누구의 잘 잘못이 문제가 아닙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결국 형식적으로는 서로 화해하고 지금은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인사는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관계에 불과하고 언제라도 다시 터질 소지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 속 깊이 박힌 상처와 앙금은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자신의 한정된 경험에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전기의 힘이 다르게 작용함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압니다. 전기의 힘이 서로 전연 다르게, 냉장고에게는 차게하는 기능을 전기포트에게는 뜨겁게하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는 상대방의 경험이 자신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자기 식견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옳음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려 고집함에 있었습니다. 내가 옳은 것도 사실이지만 상재방도 옳을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또 싸우더라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욕은 삼가해야했습니다. 나중에는 주제자체보다 이런 표현들 때문에 받은 마음의 깊은 상처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더욱 문제가 됩니다.
오늘 예수님 복음 말씀음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지 말라』『단죄하지 말라』『용서하라』고 들려 주셨습니다.
사람은 둘도 같은 사람이 없고 따라서 경험도 다 다릅니다. 옳고 그른 것은 우리가 판단할 수 없으므로 주님께 맡겨드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도 그렇고, 또 우리의 모든 형제들의 소망은 서로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평화롭고 친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단상을 끝내고, 목이 말라 냉수를 한잔 마실 양으로 찬장에서 유리잔을 꺼내면서 포트를 흘낏보고 커피잔도 또 한벌 꺼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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