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먼 길을 떠나가야만 하는 순례자처럼 앞으로 저에게 닥쳐올 시련과 고통에 대비하며 청송으로 또다시 이송 됐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산너머에는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외각지대 그곳은 글자 그대로 귀향지입니다.
남한 어디에서 찾아가도 당일로 다녀갈 수 없는 너무나 멀고 먼 길입니다. 가족이 있는 사람도 한번 다녀가기 힘든곳, 그래서 여름이면 면회실 앞엔 찾아오는 면회객이 없어 잡초만이 무성할 뿐 쓸쓸하다기 보다 아주 적막한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봄과 여름이 아주 짧고 겨울이 길고 아주 춥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여름엔 주변에 있는 직원들 아파트에서 물을 많이 쓰는 관계로 물이 무척 귀하여 더욱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감방 수세식 화장실 변기 밑을 임시로 틀어 막고 그곳에서 몸도 씻고 식기도 닦고 할 정도로 물 난리를 겪게 됩니다.
저는 교도소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모두 끝 마치고 1감호소로 이송 되었습니다. 징역이 끝나면 사회로 출소 시켜야 하지만 전두환 정권때 사회보호법이란 것이 생겨서 출소시키면 또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하여 가두어 두는 것입니다.
어는 몹시 추운 겨울날 수녀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겨울 내의와 티셔츠를 가지고, 저는 눈을 부비고 다시 생각해 봐도 분명 꿈은 아니었습니다. 가족들도 못오는 곳인데 이렇게 멀고 험한곳 까지 찾아와 주시다니 그 고마움과 반가움,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날 저녁 잠을 설칠 정도로 감회가 깊었고 많은 생각을 할만큼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후부터 수녀님은 해마다 찾아오셨고 또 수녀님과의 편지 왕래로 저는 결점 하나하나를 고쳐 나갔습니다. 세상에 버림받은 제가 누군가로부터 보이지 않는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이세상이 전부 저의 것인양 생각되었습니다.
너무나 사랑에 굶주리고 외로운 곳이라 그곳에선 편지 한통만 받아도 큰 사건입니다. 읽고 또 읽고 돌려가며 읽고 큰 힘과 용기와 위로를 받으며 그 편지를 통하여 하느님의 참사랑과 참으로 살아계심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1년2개월이 다 가도록 찾아오는 이 없고 편지 한통 받지 못하고 삶 그것은 바로 지옥이라 생각됩니다』
교도소는 죄인만 가는곳이 아닌 것을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곱의 열두형제 중 요셉의 사건이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교도소 현장선교 경험을 통해 볼 때 격려나, 구금, 사형집행 등 극단적인 처벌위주 보다는 진정한 형제적 사랑과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사람은 아주 쉽게 변화될 수 있음을 확신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