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삶이 이세상에서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세상에서도 영원한 삶으로 이어질것을 믿는다. 이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사건에 근거하고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않을것이다』 (요한11,2ㆍ6).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부활사건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영생에 대한 희망을 주고 있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믿고 죽음을 초연히 맞이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인간의 생명이 이승에서 꺼져가는 무화의 과정에서도 그것을 극복할수 있었던 힘은 분명히 내세에 대한 강한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영생을 희망하긴 했지만, 잘살고 있는 건강한 생명을 일부러 끊고 사후의 삶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살지는 아니한다. 만약 그렇다면 어렸을 때 죽거나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거나 혹은 어머니 뱃속에서 죽는 것이 차라리 행복하다고 할것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생명을 영위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 존재에게 주시는 큰 축복이라 아니할수 없다. 인간은 생명을 갖고 있기에 시간과 장소 속에서 자신을 성취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완성과정을 지향하면서도 죽음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미완성의 비운을 맛보게도 되지만, 자신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것은 후대인들에 의해 계승되고 발전된다. 하느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한신다. 인간의 참 행복은 생명과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데 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에 생명과 존재를 부여하시고 세상만물을 자유로이 선용하면서 참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셨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은 그 나름대로 인간을 의미있게 하고 충만을 맛보게 하지만 일시적인 성격을 띤다. 그것은 장차 하느님과 함께 누릴 영광과 축복을 예견하게 해 주며 완전한 행복을 위한 희망의 조건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나라의 행복이 이미 인간들 안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여주셨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과 주권이 행사되는 영역으로서, 인간이 하느님의 섭리와, 뜻에 일치되는 삶을 살 때 맛보게 되는 구원적 상태이다. 인간이 진정 하느님의 뜻에 합치하는 삶을 영위할때 인간은 이 기쁜 소식을 맛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유한하므로 죽음 이후에 이 행복은 하느님의 선물로서 영원히 지속되어 갈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의 행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에 대한 믿음을 통해 시작되었지만 죽음 이후에 완성될 것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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