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공연히 바쁘다는 밑도 끝도 없는 핑계로 책을 제대로 읽은지 오래된듯 싶다. 지지난주엔가 자동차 검사증을 바꾸러 나갔다가 돌아오는길에 바오로서원에 잠간 들렀었는데 『뭐 새로나온 책 없어요?』하고 물었더니 『살아있는 기억매체』라는 번역물이 금방 나온 새 책이란다. 우선 두껍지 않아서 넉넉한 마음이 들었고, 부담없이 사들고 올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런것이 아니였다. 그날 저녁에 슬쩍 한장을 넘겼더니, 물론 부리나케 내표지에다 꼬부장한 수결로 내 책임을 확실하게 표시하고나서, 아뿔사였다.
이건 신부님들을 위한 책임에 틀림이 없었고 거기다가「살아있는 기억매체」라는 생소한 단어의 모음이 그때서야 내눈에 확 들어왔다. 요런 탓 때문이라고 물론 생각않지마는 2주반이나 걸려서, 사온 책을 안읽을 수가 있는가? 반문하면서 말이다. 읽었는데 : 제1부, 치유하는 기억매체로서 사목자의 역할?「그리스도의 삶」이라는 기억을 일깨움으로써 우리들의 묵은 상처들을 치유한다는, 제2부ㆍ지탱하는 기억매체로서 사목자의 역할?「하느님의 현존과 부재」를 체험함으로써 현재의 우리를 지탱한다는, 그리고 제3부ㆍ인도하는 기억매체로서 사목자의 역할?「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으로써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면서 거듭 새롭게 만들어 준다는, 이런 내용들이 다른 아름다운 글 가운데 들어 있었다.
신부님이 읽으셔야할 책을 감히 나같은 그저 미사에나 나가는 신자가 읽다니하고 처음에는 생각도 되었으나 점차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들이 그안에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단한 기도와 묵상을 생활화하라』는 간곡한 말씀이다. 흔히 듣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책으로부터 이 기도와 묵상이라는 단어가 따뜻한 햇살처럼 번져 스며들었음을 나는 어쩌지 못했다. 『그분의 못 박히심, 높이 들어올리심, 못 박히어 고귀한 피를 흘리신 손과 발, 창에 찔린 옆구리』사족-책의 이름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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