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신고 포스터에는 하나같이 간첩에 대해서 붉은 얼굴, 검은 그림자와 긴손톱을 그려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긴 사람을 찾아 간첩신고를 하려면 헛수고 일것입니다. 그렇게 생긴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어릴 때 잡힌 간첩의 사진을 보면서 내 친구가 한 첫마디 말은 『어! 사람하고 똑 같네?』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평소에 간첩은 마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도 마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마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내가 어디서 마귀 그림을 보고 내 나름대로 마귀 생김새를 상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상상하던 마귀는, 무서운 얼굴에다 머리에는 뿔이 나고 온 몸에는 털이 나있고 꼬리도 나있는 괴물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마귀가 정말 이런 모양으로 사람한테 나타나서 사람을 유혹 한다면 누구나 쉽게 마귀를 알아보고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귀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면 평생 한번도 마귀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귀는 자신을 알아볼 수있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마음 속 은밀한 곳에 숨어서 암약합니다.
마귀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갓 신부돼서 아주 시골본당에 있을 때 생각이 납니다. 아마도 백리 안에 사는 미친 사람은 내가 다 만난 듯 합니다. 당시만해도 시골에서는 정신이 좀 이상하다 싶으면 일단 성당에 데리고 와서 마귀 든 사람인지 확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야한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인지 자꾸만 성당에 데려왔습니다.
연세 많으셨던 전일 신부님이 하셨다는 대로 기도해 달라면 기도 해주고, 안수해 달라면 안수해 주고, 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한 부인은 내가 두 손으로 그분의 머리를 감싸고 주모경을 외운다음 이마와 앞 뒤 목에 십자가를 긋고 성수를 뿌리고 강복을 주면 그렇게도 아프던 머리가 개운하게 낫고 시원하다면서 수시로 찾아왔습니다. 물론 이 방법도 그 부인이 전임 신부님에게서 배운 것인지, 나는 단지 그 부인이 시킨대로 했을 뿐입니다.
전기불이 없던 본당이라 밤에도 불이라곤 성당안에는 성체등만 켜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정신이 좀 약한 사람들도 자의로 혹은 가족들이 보내서 기도하러 많이 왔습니다. 어두워진 다음 성당에 들어 갔다가 머리 끝까지 쭈삣하게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성당복사(지금의 사무장)가 성당문을 열러 갔다가 혼이 났습니다. 열쇠로 문을 여는 순간, 성당문안에서 비명같은 고함소리가 났습니다. 간밤에 그 사람이 성당안에서 잠든 사이에 복사가 문을 잠궈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도 평소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었는데, 문 앞에다 큰 일 작은 일 다 봐놓고선 그 책임은 복사한데 있다면서 화가 잔뜩 나서 한참 꾸지람(?)을 하고는, 배가 고파서 자신은 아침 먹어야 한다면서 집에 가버렸습니다.
착한 복사는 빙그레 웃더니 성당 문을 활짝 열어놓고서는 코를 움켜쥐고, 확인않고 문 잠근 보속으로 성당청소를 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 모두는 마귀 든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귀의 유혹을 받은 예수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상상대로 머리에 뿔 난 마귀가 돌멩이를 들고 예수를 유혹했다기 보다 예수가 돌멩이를 들고 「배가 고프니 아버지께 청해서 이걸 빵으로 만들어 배를 채울까?」하다가, 아니다「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했을 것입니다. 또 꼬리 달린 마귀가 앞장 서서 예수를 높은 곳으로 안내하여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화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화를 누릴수 있지만 그 유혹을 포기한 것이다.
성전 꼭대기에 올라간 예수는 뭇 사람들이 보는 데서 뛰어 내린다면 그리고 다리를 다치지 않는다면 성서의 말씀도 진실이 증명되고 사람들의 탄성이 대단할 것이라 일순간 생각했지만 『주님이신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나서 실천에 옮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로 사막에 가실 때도 마귀의 안내로 성전 꼭대기에 가실 때도 남들이 보기에는 혼자 가신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악으로 유혹하는 힘이라 할수 있습니다. 은밀한 마음속에 잠입하여 나쁜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도록 유인하는 능력 말입니다. 스스로는 활동을 못하고 어떤 실체 (뱀ㆍ돼지 등)에 붙어서 활동하므로 실체인 사람은 자기의 결단으로 그 유혹을 이겨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악을 저질렀으면 그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합니다.
정신병적 증세를 드러내는 사람이 마귀 들린 사람은 아닙니다. 악으로의 유혹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악한 세력의 지배하에 있으므로 마귀 들린 사람입니다. 이들도 다른 사람들과 외형으로 전연 다른 데가 없으며 때로는 자신도 그런상태에 있음을 의식하지 못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경험으로 세상살이에서 가장 강력한 유혹은 재물과 권력과 향락입니다. 재물에 눈 먼 사람, 권력에 잡혀 있는 사람, 향락에 빠져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거기로부터 헤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 든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성경에는 이러한 유혹들과 이 유혹들에 대한 극복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순절을 시작하며 특별히 재물의 유혹, 권력의 유혹, 향락의 유혹 이 3가지 유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로 결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인간적 약함을 인정하기에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특별히 기도해야겠습니다.
오늘 아침 일간 신문을 보면서 나 혼자 한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선거날에 마귀 들린 사람들한테는 투표하지 말아야겠다」고. 그래서 미리 잘 관찰 해야겠습니다. 내가 투표하려는 사람이 혹시 재물이나 권력이나 향락에 마음이 온통 뺏겨 노예가 된 인물은 아닌지? 그런 마귀들린 사람이 당선 된 다음,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 신문에 실린 얼굴을 보면서 『어! 보통사람하고 똑 같네?』하는 실수는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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