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기꺼이 십자가 지고 가리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마태 26,14-27,66)
오늘 봉독하는 마태오의 수난기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 일어난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음을 강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모든 것을 미리 알려놓으셨는데, 그 하느님의 뜻이 예수님을 통해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암나귀와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가신 것은 즈카 9,9와 이사 62,11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바, 곧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함이었습니다.(마태 21,5) 그리고 당신이 붙잡혀 수난을 당하시게 된 것은 즈카 13,7에서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지리라”고 말씀하신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 위함이었습니다.(마태 26,31)
마태오는 더 나아가 유다가 배반한 것마저도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함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마태 27,9)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 점을 분명히 알고 계셨다고 증언합니다. “예언자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마태 26,56)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면서 이 점을 다시 한번 밝히시며 모든 일이 아버지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내어 맡기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뜻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셨다는 이야기는 모든 복음서가 다 언급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사를 두 번에 걸쳐 강조하는 것은 마태오 복음서가 유일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마태 26,39), “아버지의 뜻”(마태 26,42)이라는 표현을 통해 십자가 죽음이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왜 십자가 죽음에 넘기셨을까요? 이 점은 마태오가 전하는 최후의 만찬 기사에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행한 최후의 만찬에 관해서는 마르코 복음서(마르 14,22-26), 루카 복음서(루카 22,14-20), 코린토 1서(1코린 11,23-25)가 모두 이야기하지만,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오는 고유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려고” 계약의 피를 흘리셨다는 표현입니다. 우리의 죄가 너무 커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도저히 구원될 길이 없자,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 아들의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서 수난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를 통해 많은 이들의 죄를 씻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며 목숨을 내어놓으신 메시아이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며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도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과 함께 깨어 있어 달라고 청하기도 하셨습니다.(마태 26,38) 그리고 당신에게 주어지는 잔을 피하고 싶다는 유혹을 겪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잔을 기꺼이 마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당신의 계약의 피를 기꺼이 흘리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분의 새로운 계약의 피로 인해 죄를 용서받고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들에게 요구하십니다. 제자들처럼 잠들어 있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며 각자에게 주어지는 아버지의 뜻, 곧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맞아 우리도 예수님처럼 각자의 십자가가 놓여있는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갑시다. 피하고 싶은 유혹이 들겠지만, 그 유혹에 빠지지 말고 많은 이를 위해 우리의 피를 기꺼이 내어놓으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당신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 모두를 영원한 예루살렘, 곧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천상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