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벌백계(一罰百戒)라는 사고에 젖어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일단은 찬반의 논리를 떠나서 거리낌없이 사형제도를 지지할수 있는 환경속에 있기에 무엇보다도 명확한 논리와 그리스도교 사상의 근본적인 이론으로 사형의 모순성을 제시할수 있을 때 사형폐지 운동은 더 효과적으로 전개되고 사형폐지를 이룰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속에서 안타까운 것은 사형폐지를 위한 교도권의 공식적인 견해나 입장표명이 없고 오히려 사형을 지지하는 문헌만이 있다는 것이다. 중세교회에서 이단 카타레어(Katharer)와 발덴서(Waldenser)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1208년 교황 인노첸스 3세의 사형을 인정하는 말씀(DS795)과 비오 12세의 국가의 사형집행 권한을 인정하는 말씀
문예부흥 이후, 사형제도의 문제를 철학, 법률학, 정치학적 관점에서 광범위하게 논의하였지만 일목요연한 결정적 찬반의 결론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국가적 차원에서 사형존폐를 결정하고 있는 상태이다.
오늘날 사형제도의 문제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엠네스티 인터내셔날(Amnesty international)의 주장이나 국내에 소개된 책자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형제도의 이론적 모순성과 비인간적인 문제들 때문에 사형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 사형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침해는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교회와 신학은 사형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표명했고 그리고 어떻게 해야하는가? 또한 사형집행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사건들에 대해 교회와 사회는 무엇을 해야하며, 안락사와 낙태의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며 단호하게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 교도권이 사형에 대해서도 인간 생명과 인간 존엄성의 차원에서 반대의 입장을 취할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왜 교도권은 아직도 이러한 사형의 비인간적인 문제 즉 인간 존엄성의 침해에 대해 명확히 입장을 취하지 않는가? 이러한 문제를 제시하여 사형폐지를 위한 신학적 측면에서의 논리를 전개해본다.
1. 성서에 나타난 사형제도
먼저 원시사회와 여러 민족문화안에서 관습이나 전통에서 생긴 죄인을 죽이는 법규화되지 않은 처벌규정과 이성적 법률적 사고안에서 형성과정을 거쳐 법류화된 형벌제도로서의 사형제도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여러 문화권에 속한 민족들의 전통과 특성으로부터 사형의 역사적 측면을 제시하기에는 이론적인 결핍과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법규화 되지 않은 나름대로의 처벌형태를 갖고 있었기에 오늘날 사형의 의미안에서 논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서안의 사형제도는 분명 법규화 된 형벌 제도이다.
구약성서속의 사형
피의 보복(창세기4, 10~11)과 탈리오의 법칙(출애급 21,23~25)에 근거한 구약성서 속의 사형제도는 하나의 합법화된 제도로서 이스라엘의 역사속에 나타난다.
모세오경, 특히 신명기에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을 들어 사형의 당위성을 전하고 있다. (신명 24, 7:21, 18~21). 구약성서에 나타난 이러한 사형의 의미는 야훼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삶을 경건하게 하기 위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 모든 악을 제거하기 위한, 그것을 통한 민족의 굳건한 결합과 순수한 신앙의 보존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사형은 유태인들의 신앙과 문화에 바탕을 둔 이스라엘 민족에게 국한된 제도이며 유태인의 율법이기에 오늘날 결코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하느님에 의해서 요구되어진 형벌제도가 아니며 또한 이러한 의미가 곧 그리스도교적 형벌의 의미로 대치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구약성서의 구절을 들어 사형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입장을 표명할수는 없다.
신약성서속의 사형
로마서 13, 4 『공권은 그대의 선익을 위한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따라서 그대가 악을 저지르거든 두려워하시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을 제외하면 신약성서는 사형을 도덕적 윤리적인 차원에서 보다는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사형의 존재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오히려 사형제도가 하느님으로부터 요구된 것임을 강조하던 신권정치적인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뒤집어엎고 더 이상의 피의 보복과 폭력 대신에 사랑에 의한 악의 극복을 그리고 이 사랑안에서 친구와 적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관심사 였고 공동체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마태 5, 38~39 루가 6,29~30)
하지만 로마서 13, 1~7은 교회의 역사속에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대목이다. 즉 국가의 사형권한에 대한 문제로 교회와 신학자들은 이 부분을 인용하여 사형을 정당화했고 루터나 칼빈도 국가는 신의 지상대리권자로 주장하며 사형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성서 주석에 의하면 분명히 사도 바울로 자신이 결코 국가의 사형권한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임박한 재림사상의 영향속에서 열광적으로 살던 신자들이 세속적인 로마법의 규정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걱정한 나머지 재림까지 세상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도록 충고와 경고를 위한 뜻으로 전한 것이지 어떤 정치적 의미나 국가 권력의 인정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3, 1~7은 바울로 자신이 자신이 공동체를 위해 세상의 규정과 질서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확한 삶의 자세를 설정하려는데에 그 의미가 있다.
이러한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사형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미를 제시하지 않았고 공관복음의 전통이 제시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 나라 안에서 완성되어질 용서와 사랑을 강조하며 인간 폭력의 악순환을 단절시키고 이 폭력에 의한 희생자를 보호하며 폭력의 주동자까지도 처벌이 아닌 용서임을, 그리고 하느님의 심판은 인간의 편견과 가치관을 초월하는 완전한 자비와 용서 그리고 사랑임을 강조한다. (마태7, 1~7 루가 6,27~42)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 탈리오 법칙에 의한 보복논리에 정의와 참된 평화가 있는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속에서 참 평화와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인간적 법률을 초월하는 사랑과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2, 교부시대속의 사형관
초기 그리스도교 문화권속에 나타난 교부들(떼르뚤리아누스 미누치우스 펠릭스 히폴리투스 락탄치우스)의 견해는 세속적 국가의 공권력을 거부하고 개인 뿐아니라 공직자도 사람을 살해하는 것, 더 나아가 사형집행 장소에 참여하는 것도 금지하였다. (Laktantius, Divinae Inst-itutiones vI 20)
그러나 콘스탄틴 대제 이전의 교부들은 재림 임박설의 영향으로 이방인들의 관습이나 화려한 황제문화를 배격하고 도외시하였기에 이러한 견해를 남겼고 콘스탄틴 대제 시대에 와서는 철학자들에 의한 간접적으로 국가와 국가의 주체성의 이론이 체계화되어 사형의 문제들이 윤리철학의 대상이 되었다.
4C에 와서 국가는 도래할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이해되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De Civitas Dei)에서 정치윤리와 로마서 13장의 관점에서 사형을 정당화시킴은 물론 그 판결의 시금석을 제시하고 호교론적 측면에서 국가 공권력의 임무는 이단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Contra Cresconium 1. ≡c50)
3, 토마스 아퀴나스
중세교회에서 볼 때 교회 자체는 사형에 대한 적극적 자세는 아니었다. 이색적 표현은「Ecclesia non sitit san-guinem」즉「교회는 피에 목마르지 않다」는 뜻으로 이단의 처형에 있어서 재판은 교회가 처형은 국가가 하는 그러한 상황이었지만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 때문에 교회내의 사형반대 주장은 힘을 잃고 13C에 와서는 신학이 대학안에서 학문적으로 발전되고 이단들 문제가 신학적으로 다루어지는 가운데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사형은 공동선(Bonum Commune)의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론이 정립된다. (S.Th 2·2q 64a·2) 즉 사형은 죄에 대한 당연한 벌로서 이 형벌은 하느님의 법률에 의한 처벌이며(S·Th2·2q-08a1) 또한 사형집행을 통해 범죄 성향이 있는 사람을 미리 교육 예방하고(S·Th1·2q97a, 1) 사형은 악으로부터 공동체 전체를 보호할수 있기 때문(S·Th2·2q-108a, 4aD)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은 신학적이기 보다는 자연법에 의거한 사회학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기에 토마스의 이론은 오늘날 신학적인 의미에서 다르게 해석되어져야 한다.
4, 근세
근세에 와서는 사형에 대한 논란이 신학이 아닌 철학에서 논의되어지는데 칸트·ㆍ헤겔에 의해 더 논리정연하게 체계화 되어지는 반면 이태리 법률학자 Cㆍ베카리아의 저서「Dei delitti e delle pene」(범죄와 형벌에 대해)는 사형폐지에 큰 영향력을 주었는데, 법철학적 관점에서 사형의 모순성을 지적하였다. 한편 신학적 측면에서 린센만은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사형을 반대하는 이론을 제시하고 신 스콜라학파 신학자들은 오히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을 더 구체화하여 사형을 인정하였다. 20C에 와서 윤리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일목요연한 의견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에르메케, 쉴러, 헤링, 훼르만, 본돌피 등은 사형에 대한 신학적 모순성을 제기하고 최악의 경우 즉「국가 비상시」라는 조건을 들어 사형을 인정한다. 그러나 개신교 신학자 칼바르트는 사형폐지를 강력히 주장하며 그리스도론적, 구원론의 관점에서『사형제도는 사회학적, 법철학적인 측면의 오류이며 신학적으로는 신성모독과 같은것』이라고 (Kirche Dogmatic 1951 Ⅱ/4) 주장하며 국가 비상시에도 사형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낸다.
5, 사형폐지를 위한 신학적 변론
사형폐지를 위한 신학적 측면의 논리는 첫째 국가가 사형을 집행할 권한을 갖고 있는가? 즉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둘째, 인간 존엄성의 차원에서 사형이 인간 존엄성의 침해는 아닌가? 라는 질문이다.
국가의 형벌 목적이 공동체 전체를 보호하고 공공복리를 위해 봉사하는 차원에 있다면, 그리고 공공복리를 해치는 것에 대해서는 강제적 공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형법을 제정하고 집행할 수 있다면 과연 공공복리를 위해 사형이 최선의 방법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공동선에 바탕을 둔 토마스 아퀴나스 이론을 살펴보면 국가 공동체는 몸이며 국민은 한 지체로 표현하고(S.th.2.2q.66a.6ad2)한 지체가 병이 들거나 썩으면 몸 전체에 건강을 위해 그 지체를 잘라내어야 한다는 이론으로 이 이론에 따르면 오늘날 죄의 경중을 따질것이 아니라 사회에 악을 저지르는 모든 사람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모순이 생긴다. 특히 장애자, 노약자, 무위도식자까지도 공공복리에 이바지하지 못하면 제거되어야 한다는 독일전체주의식 발상의 논리와 비슷한 형태는 더 이상 주장될 수 없으며 개개인의 인격을 더 중요시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이론이며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하는 완전한 공동선은 이 세상에서 하나의 이상적인 이론이라 하겠다.
또한 국가의 형벌집행에는 분명 필요성과 그에 따라 윤리가 있어야 한다. 즉 국가법에 의해 사형당한 사형수의 생명에 대한 책임은, 한 생명의 단절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사형이 국가에 의한 보복이라면 사형수 자신이 스스로 생명을 끊지않은 이상 그 책임은 국가에 있다.
그러나 국가라는 의미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체(Persona)가 아니다. 그러면 누가 이 생명에 책임을 질것인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인가? 국가가 한 인간의 생명을 줄 수 없기에 국가는 한 생명을 단절시킬 권한이 없다. 한 인간 생명의 결정권은 오로지 하느님께 귀속되고, 중세의 국가개념 즉 하느님의 대리권자가 아닌 이상 사형은 국가의 권위와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 침해이며 삶과 죽음의 주재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오만불손한 행위이다. 또한 인간은 국가의 소유물이나 재산이 아니기에 국가의 목적만을 위한 개인생명의 희생은 허락될 수 없기에 사형만은 재고되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형벌의 의미를 회개와 보속 개과천선이라고 할때 사형은 이러한 의미에서 벗어나는 심각한 인간 존엄성의 침해이다. 분명 범죄의 감소는 사형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관을 형성할 때 분명 범죄는 줄어들 수 있을것이다.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낙태가 허용되는 곳에, 장기이식만을 목적으로 뇌사가 허용되는 곳에, 범죄감소를 위해 사형이 허락되는 곳에,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단절시킬수 있는 곳에, 진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더 많은 악과 죄로 스스로를 자멸시키고 마는 비극뿐일 것이다.
인간의 존엄! 그것은 인간이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위치에 있다는(dignitas)것에 있지 않고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된 생명을(honestas) 지니고 있다는데에 인간의 존엄성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은 그 어떤 가치와 대체될 수 없고 불가침적이며 죄로 인해서도 상실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는 윤리적 선의 추구와 완성을 향해 회개와 보속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친교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에로 불리운 존재이며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된 미래로 나아가는 존재이기에 사형은 회개와 보속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인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인간관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이기에 분명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또 하나의 악이라고 하겠다.